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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찬송가 235장)

말씀 : 요한계시록 21:1~27


21장과 22장은 요한계시록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말씀으로 완전히 회복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그 나라의 삶의 모습을 살짝보여주심으로 우리가 간직하는 소망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앞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서 행해지는 심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누려야할 반응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한이 곧바로 이어서 새하늘과 새땅을 보게 하십니다. 여기서 새롭다라는 단어는 좋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와졌음을 말합니다. 완전히 뒤바뀐 새로움입니다. 하지만 오해하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전의 것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계속 이전에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새로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이미 하나님은 이전부터 악한 인류를 멸하시고 완전히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실수 있으셨음에도 그러하지 않으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들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와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범죄한 이스라엘백성들만 보더라도 하나님은 제로를 만드시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심을 계속 보여주셨음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1절에서 말하는 처음에 있던 불완전함이 사라지고 바다로 비유되는 악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같은 모습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으로 말합니다. 3절은 그것을 실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으로 말하고 4절에서는 보다 더 자세히 눈물과 사망과 애통함과 곡하는 것과 아픈것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죄의 부산물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는 이 죄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악함과 죄와 어둠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창조를 행하시며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습니까? 함께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를 값없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새창조를 상속으로 유업으로 받게됨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증으로 아들로 삼아주시겠다고 하심으로 이 약속이 그 어떤 것으로도 변하지 않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반면에 이 은혜를 끝까지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을 통한 멸망만이 있을것임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십니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심판을 통한 멸망을 다시금 말씀하시는 이유가 끝까지 겁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들은 심판이 아닌 새로운 창조의 세계에서 영원한 상속을 누리게 된다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 거론하고 있는 것임을 말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새하늘과 새땅의 의미를 보다 더 확실하게 아실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랑할때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도 자랑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1세기의 성도들이 로마의 처형도구였던 십자가를 말하는 것,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할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특별히 로마의 영향에 있는 도시들에서는 그 충격이 아주 컸습니다. 왜냐하면 당대의 십자가는 저주와 모멸감의 상징으로 일반적인 이유로는 거론조차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형벌이 이루어지는 곳조차도 바라보지 않았을 정도로 악하고 저주스럽고 경멸했던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이들은 이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여전히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 입에 거론조차 할수 없었던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왜요? 예수님으로 인해 십자가의 저주와 경멸과 모멸이 바뀌어, 우리를 향한 은혜요 복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당대를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입에 담음으로 오늘 말씀이 말하는 새하늘과 새창조가 말하는 그 질적인 변화를 온 오감으로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의 박해와 고난마져도 넉넉히 감당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9절 이후에 등장하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통하여 이 새로운 창조가 있는 나라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려주십니다. 그 첫번째는 성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22절에 성안에 성전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없다고 합니까? 성전이 의미하는 실체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곳, 예수님과 영원토록 동행하는 곳 그것이 바로 새창조의 때에 성도들이 누리는 최고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 은총이 너무나도 큼을 요한은 25절의 말씀을 통해 보여줍니다. 성문을 닫지 않는다. 밤이 없다 라는 것입니다. 더이상 하나님의 새하늘과 새땅을 공격할 어둠의 세력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성의 성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이말은 실상 모든 곳이 다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26절과 27절을 해석할때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들어간다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로 인해 새하늘과 새땅이 있음에도 여전히 악함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이 새창조의 현장에는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있으며,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만이 존재한다는 말씀으로, 완전히 성취된 이 하나님의 나라는 더이상 죄의 오염이 없는 완전한 곳임을 말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이 말하는 것은 이 완전함의 회복이 확실히 있을것이며, 그 회복은 모든 악함이 제하여진 하나님의 창조의 때와 같음을 보여줍니다. 일시적이요, 미완의 회복이 아니라 완벽하고 영원한 회복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소망하며 살아가야하며, 또한 이 사실을 오늘을 살면서도 조금씩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외쳤던 십자가 처럼 말입니다.

아무쪼록 이 회복을 소망하는 우리가 되며, 또한 이 회복을 지금도 여러가지 모습으로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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