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신명기10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pr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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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요구 : 정상적인 반응
본문 : 신10장
찬송가 (496장 /구260장) : 새벽부터 우리

처음 새긴 두돌판(신9:12-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이 지나도록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모세로 인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론에게 요구하여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왜곡해서 알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 ‘십계명의 1,2계명’을 모두 거역하는 죄를 범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두 손에 들고 있던 십계명을 던져 깨뜨려 버린다. 이 모세의 행위는 ‘자기 분노 조절 장애’로 인한 행위가 아니였다. 모세가 돌판을 던진 행위는 곧 하나님의 심정을 반영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표현되어진 것이였다. 민수기 25장에서 모압여인과 행음하고 우상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염병으로 치시는데, 한 이스라엘 남자가 어느 모압 여인과 함께 행음하러 들어가는 것을 비느하스가 목격하고 들어가서 창으로 찔러 죽인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거두신다. 비느하스의 행위가 하나님의 심정과 통한 것이다. 

다시 십계명을 쓰다 (1-4절)
오늘 본문 1-4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명하여 다시 십계명을 써주시는 내용이다. 이미 깨어진 두 돌판은 ‘죄로 인해 회복 불능 상태의 이스라엘의 존재’를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돌판에 십계명을 써 주심으로 이스라엘에게 또 한번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리고 그 돌판을 언약궤를 만들어 그 안에 두고 보관하라고 하신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종교적 계약 문서를 상자에 담아서 신전에 보관토록 했는데, 지금도 중요한 계약서는 금고에 넣어서 보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계약서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이 계약을 신실하게 이행하겠다고 갑과 을이 다짐하는 것이다.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세움 (8절) 
그리고 8절에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세우신 것을 언급한다. 레위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구별하고, 레위지파에게 언약궤를 메게 하신다. 레위지파는 성막을 맡아 관리하는 직무를 담당했는데, 단순히 성막의 물건을 관리하는 것이 그들의 직무의 핵심은 아니였다. 우리로 따지면 단순히 교회 건물을 관리하는 ‘관리 집사’가 아니였다는 것이다. 레위지파가 감당하는 가장 중요한 직무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에게 많고 다양한 직무가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소임은 ‘때를 따라 양식을 가져다 주는 것’ 즉, ‘성도들이 들어야 할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느헤미야 8장에 회개운동이 일어났을 때, 학사 에스라와 총독 느헤미야는 잊고 있었던 레위지파의 직무를 회복시킨다. 바로 소그룹으로 말씀을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 8절 하반부에, 그 말씀을 맡은 레위지파에게 ‘축복권’도 허락하신다. 오늘 예배에서도 설교자가 주신 말씀으로 성도들을 축복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일어난 사건 (1-11절)
여기까지 1-11절 까지의 내용은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건을 회상한 내용이다. 자신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고, 그리고 그 말씀을 신실하게 지켜내기 위해서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시고, 그리고 그 언약궤 안에 계명을 넣어 보관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축복할 수 있는 권한도 허락하신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계속 열거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12절) _ 하나님의 요구
12절 시작 부분에 한글성경에는 빠져있지만 원어 성경에는 기록되어진 접속사가 있다. ‘그리고 지금’ ‘붸아타’라는 단어이다. 과거에 그와 같은 큰 은혜를 경험한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아!!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을 요구하신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신10:12)
하나님의 요구는 단순하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나길 원하신다’. 요행을 바라지도 않는다. ‘은혜로 구원’이라는 씨를 심었으니 이제 ‘온전한 믿음’ ‘성령의 열매’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라는 열매가 맺혀지길 기대하신다.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었으니, 은혜를 준자가 은혜를 받은 자에게서 기대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반응이 12-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요구를 하신다. 14-15절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온 천한 만물 중에서 가장 작고 작은 이스라엘을 택하셨으니, 16절에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18-19절에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듯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구제와 봉사를 실천하라는 말씀도 하신다.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은 크신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기대했는데…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떤가? 구약 이스라엘이 맺은 열매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한절로 묘사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5:2)
정상적이지 않은 결과, 이상한 돌연변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극상품 종자를 심고, 돌을 제거하고 마음과 정성을 쏟아서 잘 가꿨다. 그런데 먹지 못하는 열매가 맺힌 것이다. 종자의 문제가 아니고, 또 농부의 문제가 아니였다. 
‘밭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마음의 할례를 행하지 않았고, 목을 곧게 하여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 교만하여 자기 자신의 힘을 믿은 탓이였다.

결단과 적용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판에 심으신 복음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이 심겨졌는지를 자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생명 보다 더 아끼는 독생자 예수의 생명을 씨앗으로 우리 마음에 심으셨다. 하나님은 당연히 심은대로 거두기 원하신다. 그런데 지금 나의 삶의 영역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고, 이상한 열매가 맺히고 있다면, 내 안에 복음의 씨앗이 제대로 심겨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러므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온전한 복음이 심겨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심으신 은혜에 대한 돌연변이 같은 열매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하나님께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도록 인도하실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길 축복한다. 

기도제목 
스리랑카를 위한 중보기도 : 테러로 인해 슬픔에 잠긴 그 나라를 위로 하시고, 더 이상의 큰 피해가 생기지 않게 하시고, 남은 폭발물을 철저히 수색해서 제거 되게 하시고,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성도들을 지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