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민수기 16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r 12,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민16:1-50)
찬송가 (406장 /구464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서론 _
출애굽에서부터 사사기 시대에 이르기 까지 이스라엘은 ‘히브리 민족’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1-3절 고라당 결성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립하게 되니 이제 자연스럽게 당이 결성되는 것을 보게 된다. 당은 ‘공공 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을 일컫는 것이다. 본문에 형성된 당의 대표는 ‘고라’였고, 주요 인물들에는 ‘다단, 아비람, 온’이 있었고, 당원들은 지휘관 250명이였다. 아마도 똑똑하고 리더십이 있다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이념이 무엇이였는가 하면은,, 3절에 ‘회중이 각각 다 거룩하거늘’ 즉 평등의 이념, 민주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모두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주자” 하는 캐치프레이즈도 내 걸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해 보이고, 옳아 보이는 논리다. 
그러내 때로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필경은 사망의 길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잠14:12). 지금 고라당은 자기들의 지혜와 논리, 힘으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통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세의 리더십을 불신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모세의 어눌한 언변 때문에, 혹은 카리스마틱하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한 소프트 리더십이 못마땅했었는지, 또는 이방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였는지, 그들은 모세 보다 더 이스라엘을 잘 통치하고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놓치고 있었던 사실은 무엇인가 하면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리더로 세우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이였다. 그말인즉슨, 그들은 모세의 리더십을 불신한 것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거부한 것이였다.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자기 뜻 대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자 한 것이다. 
<적용> 때로 어떤 목회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기 위해, ‘주의 종에게 순종하고 잘해야 벌 받지 않고 복 받는다’하는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 이 본문을 가져온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세’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대한 거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평신도 뿐 아니라 목회자들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거부할 수 있다. 한국의 많은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자기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고 있는 현실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거부하고, 자기가 왕이 되어 통치하고 다스리며 살고자 할 때 모든 재앙은 시작되는 것이다. 

4-19절 모세의 대응
이어서 4-19절에는 그들에 대한 모세의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모세의 심경은 ‘답답하고, 속이 타들어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께서 4절에 바로 모세에게 말씀을 하시던지, 하나님께서 직접 고라당에 대한 조치를 취해주셔서 어떤 단판을 져 주시면 좋겠는데, 4절 부터 19절까지 꽤 긴 구절동안 하나님은 아무 말씀 없이 침묵하시고 모세 혼자 동분서주 하며 허둥지둥 뛰어다니는듯한 모습을 본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사람을 다루시는 방식 중에 하나이다. 문제 앞에 가만히 놔두고 지켜 바라보는 것이다. 
<예화> 자녀를 키울 때 때로 자녀가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울고 있으면 즉시 가서 일으켜 줄 수 있지만, 가끔은 그냥 지켜 보는 것이 올바른 자녀 양육이라고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딛고 일어나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시험을 치를 때 문제를 출제하고 바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건 시험을 치르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문제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서 스스로 답을 결정해서 답안지 답을 써내는게 ‘시험의 의미’이고, 그것을 통해서 성장하도록 하는게 ‘시험의 목적’이다. 
물론 언제나 문제 해결은 하나님의 몫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문제의 정답은 ‘이삭의 죽음’이 아니라, ‘여호와 이레’였다.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것은 그 힘든 상황과 문제 앞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인정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느냐 인 것이다. 

20-24절 하나님의 말씀 - 심판 
드디어 20절에 하나님이 이 상황에 개입하신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심판을 예고하시고, 31-35절에 그 유명한 ‘땅 die, 불 die’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땅이 갈라져서 고라당 일당을 삼키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던 250명을 살랐다. 
36-40절에 250명의 사람들이 가져온 향로를 녹여서 제단을 싸는 철판을 만들고 그것으로 이 사건을 기념하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심을 이스라엘 온 백성들로 하여금 잊지 않고 대대로 기억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였다. 
이렇게 모든 문제가 다 끝난 줄 알았다. 

41-43절 회중들의 2차 원망 
그런데 41절에 또 다시 회중들이 원망하며 들고 일어난다. 진짜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이다. 여전히 자기의 옳음, 자기들의 의의 논리를 가지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또 다시 자신들의 짧은 지혜로 하나님의 통치와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이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습이 곧 너의 모습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여 남긴 것이다. 
내 안에 나의 옳음을 주장함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자 하는 무서운 죄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남의 눈의 티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너의 눈의 들보를 제거하라”하신 주님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이 말씀에서 나를 제외시키는 순간, 오늘 본문에서 그렇게 얻어 맞고도 또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들과 똑같아 지는 것이다. 

정리_ 크게 세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의 지혜와 힘으로 나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고 사는 자가 되고, 
또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모세 처럼,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자가 되고, 
또 나의 짧은 지혜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나의 이기적인 논리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며, 항상 하나님 앞에서 ‘나만 똑바로 살자’는 마음으로 이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