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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험한 시험 물속에서(찬송가 400장)

말씀 : 사무엘상 23:1~29


오늘 새벽에 함께 묵상하는 사무엘상 23장의 말씀은 내용은 쉬우나, 그 적용은 결코 쉽지 않은 본문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반적인 믿음의 정의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따라 가는 길에 승리와 영광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데,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감에도 어려움과 곤경에 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시면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곡식이 약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분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감정적 동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물어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6절에 아비아달이 에봇을 가지고 다윗에게 왔다는 기록을 일부러 알려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제사장의 에봇에 있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나님의 판단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다윗의 물음에 하나님은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현재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사울왕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라는 것과, 블레셋이라는 나라의 군사력이 지금 다윗의 형편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는 2중고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다윗의 장군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어떻게 치겠습니까?”

이러한 장군들의 말에 다윗은 다시금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다윗은 분명 하나님께 물어보았고, 하나님의 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한번 물어봅니다. 이것으로 다윗의 믿음이 연약했고, 그래서 곤란이 오게되었다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오늘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다시 물어어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다시 물어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야할 군인들을 위해서 물어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상황적으로는 숨어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그일라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함께하는 군인들이 같이 알고, 같이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다윗은 다시한번 하나님의 판결을 물어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동일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일라로 내려가라,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겠다.”

이 결과가 어떻습니까? 함께 5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말씀대로 다윗과 군사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였고, 블레셋을 물리쳤으며,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였습니다. 환경과 상황은 할수 없는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의지하였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승리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좋은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7절 이후로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갑니까? 분명 하나님이 보내셨고,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다윗과 군사들은 사울왕에게 붙잡혀 죽게될 처지가 됩니다. 작은 그일라성안에서 포위되어 오고가도 못할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이상하죠? 말이 되지 않아보입니다. 다윗역시도 그렇게 생각한것 같습니다. 9절을 보시면 그래서 다윗이 다시금 에봇을 가져와서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이런 말을 하죠? ‘하나님 이상해요, 분명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기에 왔고,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결과도 경험하였는데, 나를 잡기 위해서, 그리고 그일라 성읍을 멸하고자 사울이 온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해가 안갑니다. 다 좋게 이해해서, 자신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었기에 잡히는 것을 이해할수 있는데,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그일라가 이스라엘에의해 멸망된다면, 이것은 분명한 모순이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해석하기 힘든 문제를 하나님께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 그렇다는 겁니다.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답변, 그래서 다윗은 그일라를 떠나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이것이 이해가 가십니까?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는 그것때문에 죽음 직전까지 가버린겁니다. 더 쉽게 정리하면 하나님말씀대로 했는데 저주받은 상황으로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이 사실은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려야하는 모습과 대치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겁니다. 어차피 다윗은 왕이되니 이런 고생도 했었어… 라고 여기면 안됩니다. 최소한 이 일을 만나고 있는 그 순간에 다윗은 전혀 자신의 다음날을 예측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때문에 큰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다윗의 이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함께 14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이 광야에서 숨어삽니다. 결코 좋은 삶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 삶에 대한 성경저자의 해석은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았다 입니다. 이 말을 앞선 사건의 연장선에서 해석하면 하나님이 일부러 다윗을 광야로 몰아 넣으셨다는 말이 됩니다. 일부러 광야에 넣어서 계속 있게 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승리와 영광의 삶을 계속 시켜주시지 않으시고, 아주 잠깐 맛을 보게 하신 이후에 바로 광야의 도피자의 험난한 인생을 살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말입니다. 왜 일까요? 왜 하나님은 굳이 이런 일을 다윗에게 행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성경은 요나단의 입술을 통해 이렇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함께 16절과 1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에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요나단이 쫓기는 와중에 숨어있는 다윗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는 내용입니다. 이말은 요나단에게 하나님의 영이 풍성히 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요나단 자신처럼 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기를 고대하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요나단의 이말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렇게 될때 지금의 나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말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이면, 당연히 여기서 다윗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하죠. 그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요나단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계획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큰 아픔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에 순종할 힘이 생긴것이고, 실제로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지금의 자신처럼 다윗도 하나님의 눈으로 지금을 해석하기를 원하고 있는 겁니다. 분명 이해할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윗에게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장소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공의를 먼저 드러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삶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삶이 그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삶임을 요나단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렇게 보면 오늘 말씀의 현장속에 있는 다윗의 형편이 우리와 많이 비슷합니다. 왜? 하나님은 저에게 이런 삶을 주십니까? 왜 좋음이 아니라 어려움을 주십니까? 라는 마음이 우리 마음의 현주소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낼수 있었고,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지 오늘 하루를 살아내시면서 묵상함으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광야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곳으로 해석해내고, 실제로 하나님의 공의를 삶에서 드러내며 살았던 것 처럼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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