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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정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수6장)
찬송가 (352장)

드디어 실전이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수백년전에 그들의 조상의 조상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정복할 날이 왔다. 이 날을 위해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간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 광야에서 바로 이 날만을 고대하며 준비하며 기다려 온 것이다. 
우리가 전에 신명기를 묵상하면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전쟁시 유념해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일러주었다. 이제 그 말씀을 실전에서 적용할 날이 온 것이다. 

배경상황_굳게 닫힌 여리고(1절)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수6:1)
당시 여리고성은 2개의 성벽으로 최고의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여리고성은 성문을 닫아 버리면 성안으로 도무지 공격해서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지형이였다. 
이스라엘에 길갈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할례를 행하여 몇날 몇일을 유숙하고, 그리고 유월절 절기도 지키고 했으니… 그 사이에 적들은 철저하게 방어태세를 갖추기에 충분한 시간이였을 것이다. 
어쩌면 5장에 나왔던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분명히 최적의 공격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상황이 잘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공격의 최적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적용>
여기서 우리는 가볍게 작은 메시지 하나를 발견한다. 
때로 우리의 삶에도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 기도하며 나아갈 때, 흔히 ‘열린문’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어떤 한 쪽의 길이 열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생각하는 것이다. 상황이 열리면 그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다 여기고, 상황이 닫히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는 것.. 과연 성경적인가!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그는 니느웨로 가기 싫었다. 그가 배를 타러 항구에 갔는데,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출항하는 찰나였다. 다시스로 가는 상황이 열린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반대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가서 여리고성을 정복하라 하셨는데, 여리고성이 굳게 닫혀 있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 보다 더 앞서지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2-5절)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2-5절에 여리고 정복과 관련하여 몇가지 명령을 내리신다. 그런데 이 명령들을 가만히 보면 ‘전쟁에 대한 명령’이 아니다. 제의적인 행위, 즉 예배의식과 관련된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째로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불어라’는 명령은 모세가 시내산에 오를 때 제사장들에게 양각나팔을 길게 불도록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를 드리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였다. 그리고 군사들이 ‘큰소리를 외쳐라’고 하는데, 여기서 ‘큰소리로’라는 말은 ‘테루아’라는 단어인데, 하나님을 찬양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열에서도 그것을 발견하는데, 가장 앞에는 군사들이 서고, 그리고 그 뒤에는 나팔을 든 제사장들, 그리고 뒤에는 법궤를 든 제사장들, 그리고 뒤에는 군사들이 호위한다. 이 대열의 중심은 바로 ‘언약궤’이다. 
이와같은 사실을 통해서 ‘여리고 정복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은 첫째로 ‘언약궤’가 여리고 함락의 가장 중심이고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즉 여리고 함락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번째 여리고 함락이 가지는 의미는 ‘이것은 육에 속한 전쟁이 아닌 영적전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물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영적 존재가 아닌 굳게 닫힌 여리고성이다. 하지만 이와같은 과정과 여리고성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능력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이것이 이 땅의 혈과 육을 상대하는 싸움이 아닌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순종(6-9절)
6-9절에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신뢰하며 순종으로 반응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는 주저함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한다. 5장에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도 안되는 명령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그런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그들의 광야 40년의 세월을 통해서 습득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 때문이였다. 광야40년동안 그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그들의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않았고, 그리고 그들의 신발도 해어지지 않았다고 신명기29장 5절에 기록한다. 이와같은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실망하지 않는다는 경험적인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특히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정탐사건때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적용> 우리도 이제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잊어선 안된다. 한번도 나를 떠난적 없으시고,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상치 못하도록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를 지켜 보호 인도하여 주신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럴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하나님께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우리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여리고성 진멸의 의미(17-25절)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17-25절에 여리고를 함락한 후에 철저히 파괴하고 그 중에 일부는 하나님께 돌리라고 명령한다. 여리고성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이였다. 히브리어로 이 명령을 ‘헤렘’이라고 한다. 헤렘의 의미는 크게 두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진멸하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의 의미는 ‘선물’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진멸하라 하시는 것에는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는 모든 악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우리가 오해 해선 안되는 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편애해서 이스라엘만 사랑하시고 나머지 다른 이방 나라들은 다 멸하시고 심판하셨다는 것이다. 
앞장에서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향해 가는데 그의 길을 가로막고선 칼을 든 한 사람을 보았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물었다. “아군이냐 적군이냐” 그에 대한 그의 답은 동문서답이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대장이다” 무슨 말인가! “너의 편도 아니고 가나안 편도 아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 하나님 편이다”는 말이다. 그러니깐 아무리 여호수아,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그도 하나님 편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적이 되어 진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7장에 나오는 유다지파 사람 아간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유다지파에 속한 자였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여리고의 진멸, 헤렘이 가지는 두번째 의미는 “죄악을 소멸시키시고 하나님의 것으로 다시 새롭게 세우심”을 의미한다. 그 예가 바로 심판 중에 구원함을 입는 기생라합의 집안이다. 그녀의 집안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주신 것이 다가 아니다. 그녀는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조상 중에 한 사람이 된다. 여리고 진멸은 곧 그 땅을 하나님의 것으로 다시금 새롭게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여호수아의 예언(26절)
마지막으로 26절에 여호수아는 의미심장한 예언을 하나합니다.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수6:26).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한 이 선언은 열왕기상16:34에 벧엘사람 히엘이 여리고성을 다기 건축하려 함으로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 본문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하는 것은 이 말씀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단지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리고성을 다시 쌓으려고 하는 저주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입었다.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잡초가 뿌리채 뽑히지 않으면 계속해서 자라올라오는 것 처럼, 겉으로 드러난 죄악된 행위들에 대해서는 회개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죄악의 쓴뿌리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악의 뿌리들까지 완전히 진멸할 것을 요구하신다. 
오늘 우리의 심령이 굳게 닫힌 여리고 성과 같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로 말미암아 나의 마음의 죄악의 쓴뿌리까지 모두 제거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 앞에 간구하며 나아가는 이 아침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이 세상에 여리고성과 같이 도무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악의 세력들이 있다. 하나님의 용사들을 통하여 그 악의 권세들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 가운데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신 가족, 불신 친구… 저들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로 붙들어 주시고, 열어주셔서 저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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