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신명기 14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pr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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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4하나님의 거룩한 자녀

찬송가 : 38예수 우리 왕이여

 

1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다고 말하고 있으며 2절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기업, 즉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을 말합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을 상기시킵니다. 왜 일까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가나안 세상은 광야에서 받은 훈련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달콤하고 유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거룩한 자녀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세상에 속한 자로 살아갈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자녀로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구별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가나안 세상에서 구별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표현대로 하자면,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세상의 문화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노출된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구별된 존재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의 가정과 직장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 참으로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의 일상이 너무 바쁘다 보니 거룩에 대하여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바쁨의 문화, 경쟁의 문화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직장과 돈의 문화, 자녀의 문화 등등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가나안 문화는 우리 삶의 곳곳에서 거룩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예로, 1절에 보면 죽은 자를 위한 가나안의 문화가 나옵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 또는 이마 위쪽의 털을 미는 것은 당시 가나안의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문화정도가 아니라, 당시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던 신전에서 이뤄졌던 제사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 우상을 섬기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21절에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풍습이 나옵니다. 염소 새끼를 요리하는 방법의 하나로 보여 지지만 사실 이것은 당시 가나안의 제사 방법이었습니다. 어미의 젖으로 삶은 염소 새끼를 제사상에 올려 이방신들을 예배하는데 사용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죽은 자들을 위한 문화나, 염소 새끼를 요리하는 방법은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거룩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한 문화적 요소들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2절과 21절 사이에 있는 못 먹는 것과 먹을 수 있는 것 사이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별된 백성에게 있어서 가나안에 존재하는 모든 의식주의 문제 또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먹는 것의 구별을 통하여 우리 존재 자체가 구별된 인생들임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녀로서의 구별된 일상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세상에서 거룩한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하면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22절 이후에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앞선 21절까지는 구별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22절 이후는 십일조 이야기를 합니다. 언뜻 보면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목적이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림에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구별된 삶과도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4절에는 십일조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성전 밖에서의 실천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7절에는 레위인들을 돌보는 것으로, 29절에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우리의 구별된 십일조, 우리의 돈과 에너지가 흘러가야 할 장소는 교회 밖 삶의 현장, 일상의 삶 속에서야 한다는 것이며, 그 대상과 목적은 이웃 사랑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지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구별됨이 교회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닌 교회 밖의 연약한 이웃을 돌보는 것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거룩에 있습니다. 거룩에 대한 열망, 구별됨에 대한 의식이 무감각해져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바라기는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있는지, 삶의 십일조가 있는지를 고민하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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