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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443)

잠언 17미련한 자


이 새벽 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시간되기 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무는 큰 나무 밑에서 있으면 큰 나무로 자랄 수 없지만, 사람은 큰 사람 밑에서 있어야 큰 사람이 된다. 무슨 말일까요? 사람은 보고 배우는 존재입니다. 아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공감을 하실 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적도 없는데, 부모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지요. 꼭 부모 자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가르치는 선임의 영향을 크게 받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초신자 때에 어떠한 신앙의 선배 혹은 신앙의 멘토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색깔이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되실 겁니다. 잘하고 싶은데,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나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누군가 배우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배우는 입장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두 가지 예가 있습니다. 좋은 예와 좋지 않은 예가 있지요. 우리가 평생 본받고 따라가야 할 좋은 모델 혹은 좋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좋지 않은 모델도 있습니다. 이런 모델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둘 다에게서 우리는 배울 수가 있습니다. 면에서는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반면에 미련 자로부터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들을 배울 수 있지요.

 

오늘 읽은 잠언 17장에서는 주구장창 미련한 자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꾸 미련한 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까요?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거죠. 이런 모습이 되지 않기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본문의 내용을 함께 보겠습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화목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의 모습에 대해서 먼저 가르칩니다. 1절에서 먼저 말씀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7:1)” 1절의 주제는 화목이 진짜 소중한 재산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이 있는 집과 집에 먹을 것이 가득한 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한번 마른 떡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른 떡, 이미 말라서 먹기도 힘든 떡입니다. 그런데 그 마른 떡 조차도 한 조각 밖에는 없습니다. 얼마나 삶이 궁핍한 상황인지를 알려 줍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인 가정의 모습이 나옵니다. 제육이 집에 가득한 가정입니다. 지금이야 뭐 고기를 흔하게 먹습니다. 그런데 과거 고대에서 육식은 웬만한 가정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이었습니다. 제육을 먹는다는 것은 재물과 권력이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주지요. 먹기도 힘든 제육이 집에 가득하다고 하니 아마 상당한 재력이 있는 집을 의미하겠지요. 그런데 성경 저자는 이런 집에서 다투며 사느니 차라리 마른 떡 한 조각을 먹으며 살더라도 화목한 가정이 훨씬 낫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가난한 가정이라고 화목하고 부요한 가정이라고 다툰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겠죠.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하는데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 때 행복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많이 가졌기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화목은 내가 무엇을 많이 벌고 가진다고 해서 화목한 가정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아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키시지 않으면 결코 화목할 수 없습니다. 3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지키고 연단시키지 않으시면 결코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없지요. 화목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7절 말씀부터 마지막 절인 28절까지 에서는 본격적으로 미련한 자의 모습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경고하십니다. 7절부터 미련한 자/ 혹은 / 어리석은 자라는 표현이 무려 9번이나 등장합니다. 7, 10, 12, 16, 21절에는 두 번, 24, 25, 28절에 걸쳐서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도대체 어리석은 자가 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는 말입니다. 특별히 거짓된 말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7절입니다. “지나친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지나친 말이라는 번역이 언 듯 와 닿지가 않지요? 지나친 말이라는 뜻을 거만한 말로 쉬운성경이나 새번역에서는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유창한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그래서 ESV성경에서는 그런 의미로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미련한 자가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어울리지가 않지 않느냐? 마치 조직 폭력배가 정의와 공의를 논하는 것이 어울리지가 않는 것 말이죠.

존귀한 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그렇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가르칩니다. 여기에서 존귀한 자란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서의 통치자는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성도로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되고 비열한 방법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잠언 17장은 거짓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거짓말이 돈과 결부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뇌물입니다. 뇌물에 대해서는 8절과 23절에서 거듭 경고합니다. 8절입니다.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뜻이 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아요. 새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뇌물을 쓰는 사람의 눈에는 뇌물이 요술방망이처럼 보인다. 어디에 쓰든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렇죠. 뇌물이 참 빠르고 편한 방법처럼 보입니다. 23절에서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악인은 사람은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뇌물로 인해서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 벌을 받습니다. 반대로 뇌물로 인해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보호를 받습니다. 누가 하는 일이라고요? 악인이 하는 일입니다. 뇌물을 받지 말고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는 구절은 구약성경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만큼 우리 사람의 마음이 돈에 취약하고 거짓에 취약합니다. 여기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재판은 누가 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이나 지도자들이 했습니다. 아무나 백성의 지도자를 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성품과 영성이 충만한 사람들이 재판관으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조차도 뇌물 앞에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와 공의로 이스라엘을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2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정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준행하는 것이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며 신자의 도리입니다.

 

또한 미련한 자의 특징은 다툼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성격에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다투는 사람들조차도 다툼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투며 살아갑니다. 왜일까요? 대부분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해서 그렇죠.

14절입니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가끔 아이들 싸우는 것을 봅니다. 백퍼센트 놀다가 싸웁니다. 싸우려고 노는 아이들은 없어요. 재미있게 잘 놀다가 어느 순간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서 싸우죠.

그런데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더라고요. 어른들도 마찬가지 일때가 많습니다. 가끔 다투는 이유를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쳐야 할 때 그치지를 못해요. 아주 작은 자존심 때문에. 결국 그 작은 자존심 때문에 상처를 주고 스스로도 상처를 받습니다.

다툼은 자신을 해치고 상대방을 해치고 공동체를 해칩니다. 19절에서 말씀합니다.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쉬운 성경에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투는 사람으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와 화해를 가져가도록 세우셨지요.

 

이 외에도 잠언 17장에는 미련한 자의 모습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우리 안에 드는 생각이 있지요. 미련한 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떠올린 그 사람이 우리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모습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모습입니다. 세상에 의인과 악인이 따로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두 모습이 다 있습니다. 만약 미련한 자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자면, 다시금 말씀 앞에 우리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이러한 모습으로 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늘 하루를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기도제목

1. 우리 가정의 화목을 위해

2. 주일예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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