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시편 127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y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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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복의 근원 강림하사 (28)

시편 127복의 근원


시편 127편은 짧은 시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이 들어왔던 유명한 구절들입니다. 시편 127편을 통해서 시인은 우리에게 던지는 짧지만 굵은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집을 세울 수 있는가?” 1절에서 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또한 가정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집을, 우리의 가정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는가? 굉장히 큰 질문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수입이 있다고 가정이 바르게 세워질까요? 아니면 단순히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가정이 바로 세워질까요? 아니면 사랑만 있으면 가정이 바로 세워질까요? 가정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복합적인 것들이 다양하게 필요합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하나님께서 가정을 바로 세워주지 않으시면 가정은 결코 올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1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이라고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서 집을 세웁니다. , 가문이 세워지는 것이지요. 먼저 혹은 가정에 대해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도 말할 것도 없이 가정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정에 대한 모습과 개념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처럼 변하고는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가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요.

성경 시대에서는 가정 혹은 집을 이룬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가문을 세운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아니 그 이상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가정과 가문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들은 저주를 받은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집을 세운다는 것은 당시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세우는 주체가 누구라고 선언합니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궁극적으로 집을 세우는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한다 할지라도 결국 내 가정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헛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헛되다라는 단어는 실체가 없다, 텅 비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혹은 가문을 이어가려고 아무리 애쓰지만, 하나님께서 세워주지 않으시면 어떻습니까? 그냥 텅 빈 집에 불과합니다. 

1절 하반절에서는 주제가 집에서 성으로 넘어갑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을 잡으면 그것은 지키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오지요. 우선 가정의 안전이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가정들의 모임인 사회의 안전으로 넘어갑니다. 집은 개인의 안전과 존재를 표현한다면, 성은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를 표현합니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은 밤에 보통 세 번 정도 교대근무를 섰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네 번 정도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파수꾼들이 이렇게 교대근무를 서봐야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헛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의 가정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의 주권자임을 고백합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 공동체의 주권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주권자임을 고백합니다. 2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개념과 상반되는 선포입니다. 흔히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하며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타고난 조건과 배경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수고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너무도 의아한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일찍 일어나서 늦게 까지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될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마치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부자 비유를 떠오르게 합니다. 한 부자가 밭에 곡식이 풍부했습니다. 곡간을 크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곡간에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았습니다. 그리고 노래하지요.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문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우리가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시면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2절 하반 절에서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라고 말합니다. 종종 악용되는 구절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많이 사랑하시는 것인가? 그리고 잠을 잘 못 이루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는가? 그렇지 않죠. 여기에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것이 개인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한 공동체나 혹은 이스라엘 전체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있을 것이다라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3절부터 4절에서는 후손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집과 성은 후손을 통해서 이어지고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3).” 구약시대에서 기업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선물로 주신 땅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는 자손이 가장 소중한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자손을 낳고 가문을 잇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히려 이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저주로 여겼던 시대입니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당시에는 자손을 낳아 기업을 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어서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머니가 열 달 동안 온몸으로 품고 맺은 열매이지요. 어머니와는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이 열매는 세상 어떤 열매와도 비교할 수 없지요. 여기에서 말하는 상급이라는 것은 보상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4절에 이 자식들을 화살에 비유합니다. 화살은 기본적으로 전쟁무기이지요. 화살의 가치는 누가 쏘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용사가 화살을 쏘면 멀리 있는 목표물까지도 명중시킬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대의 자손은 단지 가문을 잇는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닙니다. 노후의 생존과도 직결되었습니다. 5절에서도 설명하듯이, 이 당시에 자식이 많다는 것은 노후의 안정과 생존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만큼 자손은 자신의 생존과도 직결될 만큼 중요했습니다. 이 자손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5절 말미에 성문이 나옵니다. 옛날에는 성문에서 중요한 일들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성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요. 이곳에서 교제하고 사업하고 정치하고 분쟁의 해결도 이루어졌습니다. 즉 성문이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이 이루어지는 장이었습니다.

당연히 중재도 이루어지고 재판도 열렸습니다. 재판 가운데 공정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자식들이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아주 든든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갖는 것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주는 것입니까? 3절에서 여호와께서 주신다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다시금 아까의 질문으로 되돌아 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집을 세울 수 있는가?” 이 질문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바꿔볼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구약시대에 자녀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힘들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도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무엇이라도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습니다. , 물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세우고, 우리의 일터를 세우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그 분 안에 있음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셨음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 주님의 선물임을 고백하며 주님만이 우리의 주권자임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또한 앞으로의 삶도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공급하시고 세워주실 것을 바라며 기도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임을 고백하며 감사하기 원합니다.

2.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루 되도록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