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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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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박국 3장

찬양: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옵소서~~ 오늘 이말씀은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또 교회가 “부흥회”라는 이름으로 모일 때마다 항상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부흥이란 무엇일까? 숫자적 성장이 부흥인가요? 라고 말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숫자적 성장이 부흥은 아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혹은 어떤 교회가 부흥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거의 대체적으로 그것은 분명 숫자적 부흥이 있음을 전제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인정을 하지 않든 하든, 부흥이라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 부흥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 성경에서 “부흥”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유일한 말씀이 오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부흥의 성경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하박국의 전체속에서 봐야할 것입니다.우리가 엊그제 부터 하박국서를 묵상하여 왔듯이.. 하박국 선지자는 어찌하여, 왜 라는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악을 방치하시며 어짜하여 악으로부터 구원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헤이해지고, 공의는 무너지고, 악인은 의인을 애워싸는 그러한 속에서 선지자는 절망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이지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바벨론이라는 한 나라를 일으켜 이 타락한 유다민족을 심판할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머냐.. 이 하나님의 대답이 그를 더욱 이해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유다백성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들어서, 악하지만,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백성들을 멸하시는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바로 호세아 2장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리고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반드시 이루어질테니.. 이것을 믿고, 믿음, 즉 버리티라는 것입니다. 버티는 자가 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오늘 3장 우리가 보는 본문입니다. 오늘 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기 오놋에 맞춘 바 선지자의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오놋에 맟추다.. 즉 이 기도가 지휘에 맞추어 노래하도록 불려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바로 이 시기오놋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강렬하게, 격렬하게 빠른 비트에 맞추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할때, 강렬하고 빠른 비트의 노래는 대체적으로 밝고 기쁜 노래입니다. 그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이지요.. 그런데 만약 시편 51편, 다윗의 시를 노래로 부른,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라는 노래를 밝고 경쾌하게 부르면 어떨까요? 이상하겠지요.. 다윗의 처절한 회개의 시를 밝고 경쾌하게 부른다면 어울리지 않다고 느낄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시가오놋에 맞춘 노래라면 상식적으로 명량하고 희망적인 내용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 경쾌한 템포에 담겨진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두렵고 무서운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요.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창자가 흔들리고 뼈가 썪는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바벨론 군대가 유다백성을 삼킬 것이고, 그 들을 혹독한 역사의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그런 전쟁.. 그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야기였을때 그는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우울함과 무서움을 잘 나타내는 음악적 형식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이 무시무시한 내용을 밝고 경쾌한 음악, 희망에 찬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을까요?


사실 하박국서가 우리에게 닿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왜… 하나님이 이런일이 일어납니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우리의 기도 말입니다. 결국 이 질문은 보여줍니다. 무엇을요? 나의 유익에 따른 나 중심적인 기도와 생각이 우리의 기도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왜, 어찌하여 이런 때에, 이런 방법, 이런일들..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그의 기도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고, 우리도 또한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성루에 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의지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데.. 그 가운데 그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요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악인에게 고통당하는 자신의 현실, 내가 손해보고, 우리 민족이 고통을 당하는것, 그것이 그에겐 가장 크고 중요한 것, 아니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주의 일”.. 즉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 생각을 넘어서는 “주의 일”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자 어떻게 됩니까? 놀랍니다. 그 놀람은 단지 깜짝이야!라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온 몸이 녹아버린것 같은 놀람과 떨림.. 자기의 수준에서~ 자기 중심으로 판단하면서, 하나님~ 이러면 안됩니다!라고 했다면, 지금 그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치 욥기 42장에서 욥의 고백처럼..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일을 말하였습니다”라고 한 그 고백과 회개처럼 말입니다.


바로 나의 이해와, 나의 생각을 넘어서는, 내 중심적 사고를 넘어서 “주의 일”을 본 자가 할 수 있는 기도.. 그것이 바로 “주의 일을 수년내에 부흥케 하소서,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부흥케 하소서~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카야”라는 말이고, 이는 “살다” 즉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이 카야라는 단어가 쓰였던 때를 보면

왕상 17: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암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며 살리라”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것, 그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리라.. 그것이 부흥입니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이 기도는 이러한 죽음, 절망의 상태에 있는 내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앞에 반응하고, 그 십자가 앞에 다시 가슴이 벅차고 떨림이 회복되게 해 달라는 것.. 그것이 바로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는 왜 이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단지 바벨론의 손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부흥케 해 달라고. 영적인 생명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을까요? “주의 일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의 눈이 띄여지고,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을 보게 되면서 지금 그에게 정말 중요한것, 그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생명의 회복.. 부흥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할 때.. 전쟁이 속히 멈추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놓고 기도할떄, 우리가 마주한 어려움들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겸손히 인정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우리의 기도는 바로

부흥을 달라는 것입니다.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영적 죽음의 상태와 같은 우리를 다시 그 십자가 사랑에 반응하며, 하나님앞에 다시 나아올 수 있도록.. 메마른 우리의 영혼을 살려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무화가 나뭇잎이 다 말라버리고,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으로 보일때에도.. 그 구원의 기쁨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기도가 우리안에 일어나길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악함과 불의속에 고통받고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그러나 속에서 주님의 일하심, 주권을 믿으며 주님 우리로 다시 부흥케 하여주시옵소서.
  2.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민족과 이땅이 다시 주님앞에 엎드릴때, 꺼져버린 같은 소망의 불을 다시 일으켜 주시옵소서.
  3. 주여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러시아, 그속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 전쟁을 속히 멈추어 주시고, 우크라이의 사람들이 절망의 시간을 통해 주님을 보고, 그땅에 진정한 부흥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러시아 사람들안에도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다시 회복되고, 두나라가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고 다시 화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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