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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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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나 2장

찬양: 은혜의 바다, 맡은 우리 구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이 어떻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그것도 3일동안이나 살아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요나는 소설이요, 상징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폭풍우를 일으키시고 그 폭풍우를 요나가 탄 배를 향하여 정확히 던지시며, 또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큰 물고리를 미리 예비시키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요? 결국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크심과 삶과 죽음의 주관자가 되심을 보여줍니다.


사실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고 그 뱃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믿는 것보다, 사실 이 요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진심의 회개였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더욱 더 저에겐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의 기도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것처럼, 하나님께 진심으로 드리는 회개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겉으로 볼때 그의 기도는 전형적인 유대인들의 기도형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던 선지자 다운 기도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기도의 말들이 유창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회개인가 아닌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요.. 과연 요나는 진정을 하나님앞에 회개했을까요?


요나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면.. 3절 “주께서 나를 깊은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이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자신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고백이 무슨 문제입니까?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 아주 훌륭한 믿음의 고백처럼 들려지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일이 왜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했을때.. 그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 원수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을 받는 꼴은 절대로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고, 하나님이 그에게 폭풍우를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폭풍우 속에서 선원들은 제비를 뽑아 이 폭풍우의 원인을 알고자 했고, 그 원인이 “요나”임이 밝혀졌을때, 사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기 멋대로, 자기 생각과 고집을 꺾지 않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선원들을 그를 살려보겠다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를 바다 깊은 곳으로 던졌다? 


물론 요나의 기도를 진정한 회개로 보는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과 고백이라고 바라봅니다. 사실 그렇게 봐야 더 은혜가 되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가 더욱 안되는 것은 4절인데.. “내가 말하기를.. 매가 주의 목전, 즉 눈앞에서 쫓겨났다”고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쫓겨난 것인가요? 아니죠.. 그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고, 그것 때문에 폭풍우를 만나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마치 그의 고백만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러한 고통속에서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 고난을 견디는 경건의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자신을 쫓아내셨지만, 그는 말합니다. “나는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내가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때에도..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그는 그 고난속에서도 내가 주님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셨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난, 그 고난의 진짜 이유를 그가 정직히 직면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거역하고 그 폭풍우를 일으키시는 고난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 마치 그 자신이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당하는 고통앞에서도 경건함을 지키는 사람처럼 그가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마치 그의 기도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던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나는 저 죄인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듯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해보이나.. 그 중심의 깊은 회개가 없었던 바리새인의 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누가복음 18:14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는 세리처럼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했었야 했었습니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경외한다고 말해왔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주십시요. 나의 부르심을 기만한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 했던 이 교만함을 용서해주십시요. 그리고 다시 한번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요나의 기도는 “자기 중심적 기도”였습니다. 종교적이었고 경건해보였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그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 보낸 그 폭풍과 파도도, 용서받을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주권을 알게 하시기 위해 보낸 물고기도.. 그저 내가 당하지 않아야 할 고난속에서 그래도 자신은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한 결과요, 정당한 댓가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자기연민과 자기의만을 드러내는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요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오늘 나의 고집과 생각들속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며 그것이 오히려 우리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오늘 이 말씀은 어떻게 하나님앞에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와 같은 우리의 모습, 회개조차 할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 수 있고 서야하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 은혜앞에 감격하며 그 은혜를 붙잡는 삶.. 그것외에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정당한 댓가로 여기게 만드는 그 우리의 “믿음”, 우리에겐 그분의 사랑을 받을만한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설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요, 예수님이 행하신로 인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의를 자랑하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요나와,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처럼.. “주여 나는 주님의 긍휼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기 원했던 그 혈루병 걸린 여인처럼.. 오늘 우리의 죄악을 정직히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 은혜를 붙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랬을때, 그 사랑은 우리로 다시 일어서게 할 것이요, 이 땅을 살아가야할 그 사명, 우리의 삶의 이유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의 정직한 모습, 그 모습으로 주님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주여 우리의 모습을 정직히 바라보게 하시고, 가식과 위선의 신앙인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깊이 알며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의 교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주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없는 우리입니다. 주의 은혜만을 붙잡고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3. 우리 민족을 긍휼이 여겨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지도자가 세워지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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