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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찬송312장)

말씀 : 스가랴 9장 1~17


오늘 우리가 읽은 스가랴9장을 보면 두 왕이 등장합니다. 

한 왕은 강력한 군주입니다.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포악하고 잔인하기가 이를데 없는 강력한 군주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왕은 평화의 왕입니다. 왕인데도 백마를 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평화의 왕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스가랴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장에서 8장까지와 9장에서 14장까지로 구분됩니다. 

1장에서 8장까지는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 재건 공사를 이루도록 유다 백성들을 격려 하는 본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했고 성전 재건의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이들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16년 동안이나 성전 재건 공사를 미루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공사의 책임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위해서 두 명의 선지자를 준비하셨습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그들이었습니다. 

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다시한번 일어나서 성전 재건에 힘을 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을 보고 듣고 백성들에게 전달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열심을 내어서 성전 재건 공사의 대업을 이루어냅니다. 그 이후에 9장에서 14장까지는 멀고 먼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약속을 역시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9장 말씀은 알렉산더 대왕과 그리스도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 스가랴서 특히 9장이 기록된 연대는 기원전 500년 어간입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서 활동했던 시기는 그로부터 약 170여년이 지난 이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170년 이후에 일어날 일을 마치 지금 일어난 것처럼 기록합니다. 마치 지금 눈 앞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위대한 점이고 동시에 우리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야 하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3년에 잇수스 전투를 통해서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 당시 세계의 패권은 페르시아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의 제국과 잇수스에서 맞 붙었습니다. 기원전 333년에 잇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괴멸시킵니다. 그 시대에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그 이후 알렉산더 대왕은 시리아 지역을 점령합니다. 또 해안선을 따라서 팔레스타인 아래로 내려옵니다. 

두로와 시돈을 점령하고 그 이후에 블레셋 그 다음은 이집트였습니다. 

강력하고 왕성한 군대를 이끌고 질풍노도처럼  알렉산더는 모든 지역을 점령해 갔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특별히 두로를 점령하고 그 이후에 블레셋을 점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절과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두로는 아주 강력한 도시국가였습니다.  두로는 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는 특이하게도 해안에서 떨어진 섬지역 약 800여미터 떨어진 섬 지역에도 똑같은 도시를 하나 건설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강국들이 두로를 점령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성 때문이었습니다. 육지에 있는 해안도시는 쉽게 점령이 되었지만 섬에 세워진 성을 점령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앗시리아가 두로를 점령하기 위해서 5년간 포위했다가 실패합니다. 

바벨론은 13년 동안 포위했다가 실패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한 순간에 두로를 점령했습니다.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먼저 해안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합니다. 그 파괴하고 나온 폐기물로 뚝을 쌓았습니다. 그 폐기물을 바다에 던져서 간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지상군을 투입하여 섬을 점령해버렸습니다. 약 5개월만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그들의 권세를 바다에 주께서 쳐 넣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로의 군인들 중에  가운데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사람 이 천명을 골라서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두로 시민 3만명을 각국의 노예로 팔아 치웠습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두로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가장 겁을 낸 사람들이 그 아래에 블레셋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두로를 이렇게 점령하고 그 다음 블레셋에게로 내려갑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블레셋의 다섯 부족 연합체를 철저하게 심판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렉산더 대왕이 한 일을 주께서 그리 하셨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170여년 이후에 일어날 일이 성경에 마치 눈 앞에 본 것처럼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우리의 인생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그제나 과거에나 앞으로도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고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질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받아야 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에 그대로 이루어진다. 축복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일어날 불행과 저주는 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겸허히 살아야 합니다.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진리의 말씀임을 붙들고 살아가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 명의 왕 장차 오실 메시아를 스가랴 선지자는 말합니다. 9절과 10절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나귀 타신 예수님,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예수님, 복음서 기자들은 스가랴 9장의 이 말씀을 인용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들이 그렇게 기록한 것보다 여기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강력한 군주 알렉산더와 나라히 놓고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니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평화의 왕으로 오셨는지 더 두드러지게 보여집니다.

 세상은 강력한 군주를 원하지만 사랑과 평화만큼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그 옛날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알렉산더 제국은 지금은 사라지고 역사에 흔적도 없습니다. 폐허 속에 남겨진 자취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도 지금 주님의 사랑의 힘입어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고 또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여전히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 만큼 강력한 것은 없고 평화 만큼 위대한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의 왕이시며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본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강력한 힘과 권세와 세속의 물질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교회는 더 겸손해야 합니다. 왜요? 나귀타신 예수님처럼 더 낮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강한 능력이고 세상의 악을 이길 수 있는 위대한 비결입니다. 

오늘 우리가 대비시켜 보여주시는 두 왕의 모습을 보고 나는 과연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내가 지금 닮아야 될 분인지 스가랴 말씀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왜 우리가 약한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하루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1) 약한 모습으로 살아도 사랑과 겸손한 삶이라면 하나님이 그 인생을 존귀하게 사용하시는 줄 믿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 속에 이루어짐을 굳게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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