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느헤미야 1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pr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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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눈물. 그리고 기도


찬송 361 기도하는 시간

본문 느헤미야 1:1-11


오늘부터 우리는 느헤미야서를 살펴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서와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까지 살펴 보았던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한 권처럼 연결되어 있는 책입니다.


왕의 술 관원으로 있었던 느헤미야는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다에서 온 하나니가 전한 소식인데… 유다 사람들이 큰 환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것이죠. 여기서 큰 환난은 에스라 4:23의 사건입니다. 성전 건축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공사를 멈추게 한 것이죠. 이 소식은 느헤미야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습니다. 주저 않아 울게 만들었습니다. 수일동안 울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비전(vision)’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비전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비전입니다. 같은 사건을 접하지만. 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 갈수 있는 사건이지만 거기에 마음이 가고, 그것이 나를 주저 앉히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비전입니다.


컴패션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기독교 기반의 국제어린이 양육기구입니다. 이 단체를 설립한 사람은 에버렛 스완슨(Everett Swanson)이라는 목사입니다. 1952년이었습니다. 한국 전쟁에 파견된 미군을 위문하기 위해 에버렛 스완슨(Everett Swanson) 목사가 한국에 방문을 합니다. 그리고 뜻 밖의 장면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 아침 버려지는 전쟁고아들의 시체 더미입니다. 그것을 본 스완슨 목사는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겠다고 맹세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 고아들을 돕기 위한 모금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컴패션이라는 단체가 세워진 배경입니다.


전쟁 중에 고아들의 시체 더미를 본 사람이 한 두명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왜 스완슨 목사는 거기서 돌아설 수 없었습니까? 그에게 이 일이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에 속해 있는 한 자매님을 통해서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있은 후에 돌보아야 할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별히 우리 주변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인은 주변의 사람들을 도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 되시는 형제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멀리 있고, 모르는 사람인데도 그들을 돕더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한 병원 의사들에게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알지도 못하는 그 곳에 마스크를 보내는 등의 자신의 생각과 다른 곳에 마음을 쏟고 있어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인 있습니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조금 가슴 아프고 말 수도 있고, 새로운 정보라고 생각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 일이죠. 그러나 누구에게는 그냥 스쳐지나갔던 그 일이 누구에게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나의 마음이 가고, 그것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것. 그것이 비전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라고 하는 같은 상황 속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소식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이 상황 속에서 오늘 아침. 특별히 내 마음이 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오늘 아침 주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주께서 바라보게 하시며, 주께서 마음을 쏟게 만드시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국경 너머의 선교사님들이 떠오르십니까?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에 있는 노동자들이 떠오르십니까? 가정교회에 속해 가원이 떠오르십니까? 가족과 떨어져 싱가포르 땅에서 혼자 생활하는 청년들이 떠오르십니까? 


오늘 아침에 떠오르는 그 곳. 그 사건이 오늘 나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그 비전을 붙잡고,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느헤미야는 그것을 붙잡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그것을 가슴에 품고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금식도 병행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유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듣고, 해결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자신의 힘을 동원하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로비를 하고, 조언을 구했던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금식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 되었습니까?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느헤미야 2장 1절을 근거로 해서 보면, 4개월간 금식과 기도가 지속되었습니다. 한 번의 기도로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끌어 안고만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을 찾아다니며 해결책을 찾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의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가야합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한 두번 기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계속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이 땅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 땅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민족이 있고, 기도하는 교회가 있고,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 싹이 나고 꽃이 피어나 마침내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오늘도 포기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주께서 나의 마음이 머물게 하신 비전을 붙잡고 오늘을 투자하는 주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