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말라기4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pr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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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주께로 한 걸음씩 (찬송532장)

말씀 : 말라기 4장 1~6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을 만나는데 그들이 이룬 업적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룬 업적을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다윗같은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도 다윗처럼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 인생에도 아브라함 같은 복이 마음껏 내려지도록, 하나님 우리 가정에도 복 내려 주세요! 사람들은 업적에 관심을 가지고 믿음의 위인들이 이루어낸 일이 내 인생에도 우리 가정에도 일어나기를 소망하고 고대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이 그냥 옛날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합니다. 오늘 21세기 우리의 삶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그냥 흘려 보냅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성경을 읽으며 원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홍수로 심판 받고 멸망 당하는데 노아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하나님이 노아와 어떻게 동행하시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함께 동행하셨고 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을까? 원리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하면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저 목동 다윗을 일으켜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게 해 주셨는데 나에게도 그렇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다윗이 살아간 것처럼 나도 원리만 알면 그 길을 따라갈텐데 원리를 찾고자 말씀 붙들고 살아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분들은 이런 분일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라기 4장에서 하나님은 흑암의 세대,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믿음의 원리를 가르쳐주십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시절은 굉장한 암흑시절이었고 힘든 시절이었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함부로 살아가는 세대였습니다. 

말라기 시절보다 한 세대 이전의 사람들은 희망이 넘쳤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성전 재건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함께 힘을 합쳐서 성전 재건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지지부진했습니다. 16년 동안이나 성전 재건이 미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두 사람을 보냅니다. 학개와 스가랴가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성전재건 공사를 결국은 마무리하십니다. 


특별히 사람들은 스가랴 선지자의 입을 통해 선포된 예언에 크게 힘을 얻었습니다. 

여호와의 싹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싹이 일어난다는 말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드디어 메시아가 오시는 것인가? 우리가 성전을 재건하기만 하면 내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여호와의 싹이 일어나서 우리 인생을 흑암에서 구원해 내실 것이다. 이렇듯 큰 희망을 가지고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성전을 재건해 했습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하루, 이틀, 일 년, 이 년, 십 년, 이십년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똑같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식민지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여전히 궁핍하고 여전히 삶은 어렵고 가난하고 흑암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포기합니다. 신앙을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눈먼 것, 다리 저는 것, 잘못된 제물을 가지고 나와서 대충 대충 제사드렸습니다. 제사장들도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응당의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전은 갈수록 피폐해져갔습니다. 이런 암흑 시대에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서 구약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말했던 하나님의 싹, 여호와의 싹, 메시아는 말라기 이후에도 약 400여 년이 지나서야 오십니다. 

그러면 400년 동안 저들은 암흑 시대를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면 말라기 이후의 40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버린 받은 세대들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시고 포기하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운 시절 영혼의 깊은 밤, 흑암의 터널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원리를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 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경외라는 말은 히브리어 야래입니다. 야래라는 말은 두려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다 라는 말은 누가 나를 때릴까봐 매 맞을까봐 학대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말씀입니다. 여기서 야래라는 말은 나보다 크고 어마어마한 존재, 그 존재 앞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그 앞에 가면 허리를 굽히고 겸손해지는 그런 모습을 뜻하는 경외입니다.  

지금 비록 하나님의 은총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먼 훗날 메시아가 오셔서만 너희 인생이 바뀌어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 하나님은 너희 각자의 삶 속에 함께 하는 분이시니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기억하라. 포로 해방의 기억, 애굽 해방의 기억.! 여전히 사랑하심.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합니다. 내 인생이 획기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내 인생이 획기적으로 변화되든 변화되지 않든 내 기도가 원하는대로 소원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린 그걸 기억하지 못하고 기도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계시고 이루어 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락하고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신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가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암흑 시대를 살아가는 말라기 시절에 수많은 백성들에게 여호와 앞에서 사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뭡니까? 의로운 해가 떠오른다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공의는 체다카입니다. 구약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인 체다카는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의미합니다. 해는 모든 자연 만물이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인자, 체다카가 우리에게 힘을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코람데오의 삶,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체다카!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비추어주신다 약속 하십니다. 

그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우리를 고쳐 주신다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주신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치료하는 광선은 육체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정신까지도 포괄하는 치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몸과 육체와 영혼과 정신까지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암흑 시대를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꼭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에게 주시는 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원리를 꼭 붙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아가면 악이 범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히려 악인을 밟을 것이고 악과의 싸움에서, 죄와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면 악을 이기고 선이 승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승리를 맛보는 주의 백성들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살아가는 이 세대 너희들은 비록 백 년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이지만 그러나 너희 후손들은 능력을 보게 될 것이고 여호와의 싹을 그 전에 나타나는 선지자를 볼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기약없는 약속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약속임을 이루어 주고 보여 주고 계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이후에 400년 동안 잠잠했던 선지자,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선지자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신약의 첫 번째 선지자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이 예비되고 준비되었다는 것은 곧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증거입니다. 기대하고 소망하고 대를 이어서 하나님 앞에 경외하고 야레 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하나님은 때가 되면 그 하나님의 길고 긴 기다림 가운데 반드시 선지자 엘리야 즉 세례요한을 보내시고 그분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의 싹 메시아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비록 우리 세대에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오고 오는 우리 후손들에게 메시아를 보내시는 이 놀라운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영혼의 깊은 밤을 보내고 계십니까? 기대하고 소망하고 원하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다면 그 일 때문에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신다는 경외하는 인생을 사시고 야레의 인생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치료하는 광선, 악인을 우리가 제압할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또한 우리가 바라는 메시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과 은총이 우리 삶에 가득차고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1)  어두움의 시간에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하소서


2)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