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다니엘 6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an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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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다니엘 6장

찬양: 주 내삶의 주인 되시고,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신임합니다. 오늘날 말하는 학연도 지연도 없었던 그는 포로 출신이었음에도, 그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온 땅을 다스리게 할 만큼, 그 모든 것을 맡길만큼 다리오 왕이 그를 신임하였던 이유는 3절의 말씀처럼.. 바로 “충성됨”이었습니다. 왕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게하였다는 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는 하나님앞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듯,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리오는 그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그를 총리로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다니엘을 시기합니다. 그에게 허물을 찾아내려하지만, 찾을 수 없자.. 그들은 허물을 만들어내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다리오 왕에게 이렇게 제안하지요..

“이제부터 30일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그를 사자 굴에 넣기로 하는 법령을 제정하게 해 주십시요.” 

다리오 왕은 그 법령을 좋게 여깁니다. 그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원죄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의 최고의 유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이 법령이 다니엘을 잡기위한 그들의 음모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가 왕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한 번 내린 명령을 돌이켜서는 안된다는 함정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결국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말하죠.. “네가 항상 섬기는 너희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16절)


다리오의 이 말은 무엇인가요? 믿음의 고백인가요? 그의 이 말은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것이지요.. 


어째든 그는 안타까워했고, 마음 아파했던 것은 같습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그 앞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죠..”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20절)


다니엘은 살아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일을 보고서는 다리오 왕은 온 땅에 이런 고백의 조서를 올리지요.. 그것이 바로 26-27절입니다.


과연 다리오는 믿음의 사람이었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저는 다리오와 다니엘을 대조하면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이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주는가..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다리오는 적어도 합리적이고 유능한 통치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그는 자기의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되고 싶어하였던 것과, 그렇기에 자기의 것을 내려놓지 못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했다 해도, 다니엘을 불쌍히 여겨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해도, 그가 이른 새벽 일어나자 마자 굴을 찾아갔어도.. 이 모든 일은 결국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그 교만의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가? 내 안에 우리안에 이 다리오이 있지는 않습니까? 새벽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금식하며 은혜와 기적을 사모해도.. 멋진 설교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닌 내가 주인이라는 그 교만가운데 있다면, 그 모든 행위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괜찮은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라면 그것은 불신앙이요, 죄악일 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안에 이러한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요..  결국 나의 삶의 주인인 나를 위해 하나님께 구하여 금식하는 삶이었다면, 우리안에 이 다리오의 모습을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가운데 오늘 본문은 자기의 삶의 주인이 자기라는 그 교만함속에 있는 사람들, 즉 세상속에 다니엘이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30일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것! 그러면 사자굴에 들어갈 것!이라는 법령이 선포되었음에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소대로 습관대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세상속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신앙의 모습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그 행위로서만 주목한다면.. 어쩌면 “은밀한 골방에서의 기도를”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지 않았을까.. 구지.. 그렇게 창문을 열고 기도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만약 그가 30일동안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실까?를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실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습관을 따라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의 모습, 이 “습관”을 따라 기도했다는 것, 타협하지 않은 것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그의 모습이 아니라, 그가 기도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지금 다니엘에게 놓여진 문제는 “기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백”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단지 습관을 따라 꾸준히 기도해야 좋은 신앙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율법의 요구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그가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이 기도는 “오직 신은 다리오도 아닌, 어떤 다른 신도 아닌 여호와 하나님만이 신이시고, 나는 그 하나님만을 섬긴단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리오가 아닌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 감사는 상황에 대한 감사도,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서 드리는 감사도 아니라, 여호와가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반석과 구원이 되심을 인한 감사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우리 자신을 최고로 만들어주겠다는 재물과 명예의 유혹속에서, 그리고 고난과 환란속에 낙심이 있는 세상속에서 나 자신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기도가 아니라, 그 환난에서 단지 구해달라는 기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려는 치열한 몸부림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고백이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헌신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그 치열한 고백을 목숨을 걸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리오는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 오늘 우리의 기도가 가능하고,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절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고백 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그 사자굴 속에서 괴롭지 않았을까요? 아니요 그 또한 그 사자 앞에서 엄청난 번민과 괴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감사는 단순히 죽음에서 건저주실 것에 대한 감사나, 그가 살아난 뒤 기뻐한 기쁨도.. 단지 죽음에서 건저주셨기에 기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시기에 가능한 감사였고,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보여줄 수 있기에 기뻤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앞에 무죄하다는 말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런 고난을 당했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죄인임에도 경험하는 은혜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자기가 자신의 주인됨으로 살아가라는 끝없는 유혹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니엘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 능력은 바로 “기도”밖에 없다!! 그 기도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기도요, 그 기도를 통해 우리는 죄인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임재와 동행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기도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조지물려입니다. 그는 5만번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러우시나요?? 그러나 우리는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살아온 시간..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시게 인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그를 부러워한다면, 단지 그의 응답의 횟수가 부러운게 아니라, 그가 기도함으로 그 임재와 동행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그를 부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하나님을 경험함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신자의 가장 큰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 아무것도 아닌 죄인인 나를 부르시는 그 은혜 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로 주님의 나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기도하는 우리의 2022년 한해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주님 우리가 다리오처럼, 여전히 삶의 주인이 나인 주님 조차도 뜻을 이루기 위해 도와주시는 분으로 생각했던 우리 자신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2. 우리로 다리오가 아닌, 주님만에 나의 삶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고백속에서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3. 기도함으로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4. 이땅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주님 다시금 주님만을 이땅의 주인으로 섬기는 나라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