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에스겔9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Nov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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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겔 9장

찬양: 주님의 마음을 가진 , 빈들에 마른 같이


하나님께서는 8장에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실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심판을 준비하라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9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을 관할하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지키는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인 예루살렘을 지켰던 그들에게 이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놀라운 것은 바로 2절에 보면, 그들에 놋제단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터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게 놀라운 일일까요? 여러분 놋제단 그곳은 어떤 곳입니까? 인간의 죄와 그에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해결하는 곳이 바로 놋제단입니다. 그런데 이 제단이 그 주어진 역활을 하지못하게 되자.. 어떻게 됩니까? 회복의 자리였던 그곳이 바로 심판의 첫번째 자리가 된 것입니다. 참된 제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엑 무엇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바로 이 놋제단, 즉 예배에서 생명과 죽음, 즉 삶이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삶과 죽음이 바로 여기에서 판가름난다는 것입니다. 놋제단이 회복되는 것, 즉 참다운 예배가 회복되는 것은 우리에겐 생명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생명입니다. 반대로 예배가 무너지면 그것은 죽음이요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은 돈과 명예, 그리고 건강에 삶과 죽음이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우리의 삶, 우리의 생명은  삶은 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세상적 성공과 실패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의 생명은, 예배에 달려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그 만남의 자리.. 그 예배의 자리가 우리의 삶과 죽음이 달려있는 그 생명의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만남의 감격과 은혜가 있는 예배입니까? 아니면 형식적이고, 메마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생명이 예배에 달려있다면, 우리는 온 마음을 드려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될때, 우리는 생명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며,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풍성한 예배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2절 마지막에 보면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으 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는 4절..  “그 가운데 행하여지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여 우는 자의 이마에 먹물로 표시하라”고 하십니다. 첫번째 유월절에,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을 심판하는 천사가 넘어가듯이.. 이마에 먹물의 표시가 있는 자들에게 심판이 면하여 집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면하게 되는 자들, 그 이마에 먹물로 표시가 된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바로 세상의 많은 죄와 거짓을 보고 탄식하는 자들입니다. 애통해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뒤집어쓰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통하며 우는 자들.. 바로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구원받은 우리의 사명은 바로 이 중보자의 사명입니다. 세상의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 이 죄악과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고 기도하며 애통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눈물을, 애통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8절에서 에스겔의 기도처럼.. 하나님앞에 엎드리며, 부르짖으며..  오늘 우리의 기도의 자리가, 우리의 죄와 이 세상의 죄를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는 자들로 넘쳐나는 회복과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그 성읍엔 죄와 불법으로 가득하게 되었을까요? 어쩌다가 그들의 죄가 그토록 심하고, 불의한 피로 가득하게 되었을까요? 9절은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누구의 말입니까? 죄와 불법을 저지름으로 가득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들의 말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모든 기대와 소망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다. 우리에겐 소망이 없다!” 기대없음 절망…


왜 이것이 그들이 죄로 가득차게 된 이유일까요?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절망”이요, 그 절망은 바로 기대와 소망없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소망을 두지 않은것.. 그것이 왜 하나님을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한 죄일까요?



열왕기하 13장에 보면, 엘리사와 요아스 왕이 등장합니다.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화살을 쏘라고, 그리고 땅에 치라, 그것은 구원의 화살이다!라고 말하빈다. 그러나 요아스 왕은.. 그는 세번밖에 치지 않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에게 5-6번은 쳐야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이사야 7장에도 등장합니다. 어려움에 빠진 악한 왕 아하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떻게든 니가 구한다면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 라고 말이죠.. 그러나 아하스는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구하지 않았습니다.


왜 요아서는 그 화살을 2-3번밖에 치지 않았고, 아하스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았을까요? 왜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요?

바로 기대없음..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사라져버리고, 무기력해지고, 의욕이 상실되어져버린 것.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들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상태요, 그 믿음없음이 그들로 하여금 죄악으로 빠지게 한 것입니다.



사랑한은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어려움에 빠진 자녀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속에서, 직장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속에서, 시부모님과 부모님과의 관계속에서, 몸의 질병으로 아픈 상황속에서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실..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시키킬, 우리의 아픔을 낫게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그분을 향해 부르짖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기대가 사라져버리고, 냉소적인 마음으로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로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감각해져 버린 마음을 다시 만지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볼때에도, 세상을 볼때에도 어떤 관심도 애통함도 잃어버린 채, 죽어서 모든 감각이 사라져 버린 우리가 되어 있었다면, 이 시간 우리가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로 주님을 보게 하시고, 다시 우리의 영이 주님을 향한 기대와 소망,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키시고, 이 황폐한 땅을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1. 오늘 기대와 소망이 사라져 버린 , 냉냉한 마음과 냉소적인 마음으로 그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린 우리의 예배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다시 우리를 회복시키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오늘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기에, 더욱 기도하며 나아가오니.. 주여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우리의 문제가운데 주님 역사하여주시고 주님의 방법으로 해결하여주시옵소서.
  3. 주님 자신을 향해, 그리고 이땅을 향해 주님의 마음을 품고 애통함으로 기도하는 나와, 우리 교회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