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이사야19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n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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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이사야 19장)


오늘 본문 말씀은 ‘애굽을 향한 심판과 구원’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십대 청년때에 성경 목록 중에 ‘선지서’를 즐겨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 세상 나라를 심판하시는 다는 메시지가 답답한 제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지서의 내용은 ‘심판하시나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한 ‘심판과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심판과 구원의 말씀 중에서 ‘심판하신다’는 말씀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읽었습니다. 구원에 관한 말씀이 나오면 그냥 건너 띄기 까지 했습니다. 

오늘 이사야 19장은 애굽을 향한 말씀이죠. 애굽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입니다. 물론 이사야가 활동 하던 이 시기에는 애굽이 이전 만큼 강성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애굽의 눈치를 봐야 했고, 또 애굽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애굽을 향한 심판의 말씀이 1~15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5~10절에서 예언하기를 나일강이 다 말라버리게 될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이집트 문명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 대 공황이 올 것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11~15절에서는 애굽의 정치계의 리더들이 몰락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심판하시는 내용을 읽으면 속이 시원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못살게 굴더니 꼴좋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16절 부터 이어지는 내용이 제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16절에 그날에 애굽이 떨며 두려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떠는 구나. 그래 봐야 소용없어. 너희 이제 끝났어’ 이런 생각으로 말씀을 읽어가는데, 18절에 뜬금없이 ‘그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19절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죠. 도대체 이게 무슨 흐름이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에서 ‘다섯성읍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멸망의 성읍’이래요. ‘에이 그러면 그렇지… 결국 망하는 나라네.. 그리고 이 단어가 예전 ‘개역한글성경’에서는 ‘장망성’이라고 번역을 했었거든요. ‘장차 멸망할 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럼 그렇지.. 결국에는 망한다는 말이구나.. 생각하면서 묵상하는데, 아무래도 ‘장망성’ ‘멸망의 성읍’이라는 단어가 전후 문맥과 너무 맞지 않는 단어인거예요. 그래서 이런 저런 주석을 찾아 봤는데, 하나같이 하는 얘기는 여기서 ‘장망성’ ‘멸망의 성읍’은 사실 ‘태양신을 섬기는 성’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태양신을 섬기던 애굽의 한 도시가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도시가 되었다’이런 의미라고 하는거예요. 
22절에는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25절에서는 정말 기가 막히 표현이 나옵니다. ‘내 백성 애굽’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23절에서 ‘그날에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애굽과 앗수르가 손잡고 사이좋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세상 나라 앞잡이 역할을 해오던 애굽과 앗수르는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왜 저렇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못살게 굴고 핍박했던 저들을 저렇게 용서해주십니까! 이런 마음이 들면서.. 평소 같으면 그냥 건너 띄고 싶은 말씀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모습과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요나 선지자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요나는 니느웨는 정말 죽기보다 가기 싫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니느웨로 갔지만 건성 건성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죠.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가 전한 말씀을 듣고 울며 회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건 요나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거든요.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은 전해도 듣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갔고, 하나님께서 니느웨에게 내리라고 한 재앙은 내리지 않으시고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이 모든 모습이 요나의 보기에는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을 때, 회개하며 주께 돌아오는 과거 하나님 나라 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마음이 요나의 마음안에 있었던 그 마음과 동일한 것이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악한지,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얼마나 연약한지를 요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겔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마음’이 우리 하나님의 창조 이래로 단한번도 변함이 없는 마음이 이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방인이라 할찌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는 언제든지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구원해 주시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구속사를 잇는 사명자로 세우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너희는 원수까지 사랑하라’하실 때, 사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절하고 반역한 자들이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올 때, 저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한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오늘 애굽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특별한 은혜가 필요한 이들이 있습니까? 과거에 하나님을 믿는 가족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서 있던 이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가족일 수 있고, 또 직장 동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친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저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정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자들이 주님을 알게 하시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와 기적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나아가는 이 아침이 되길 바랍니다.

  1. 내 안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마음을 부어 주시사 어느 누구와 관계 할 때에 이 주님의 사랑이 흘러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완강하게 거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여 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