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스바냐 1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l 27,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찬송 : 주 예수의 강림이(찬송가 179장)

말씀 : 여호와의 날


오늘부터 함께 묵상할 스바냐서는 1절의 표제와도 같이 요시아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시야는 유다의 16번째왕으로 8살때 즉위하여 31년을 다스린 왕입니다. 그의 선조였던 히스기야왕의 대대적인 종교개역으로 모든 우상과 이방의 관습들이 제거되었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가 즉위한 이후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다시금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므낫세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아몬도 므낫세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어린 요시야가 즉위하였을때에는 이미 남왕국 유다가 종교적으로 혼합주의화가 되었으며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스바냐가 고발하는 상황은 요시야가 이러한 상황속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의 상황과 일치합니다. 그러기에 스바냐의 말씀을 보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 과연 그 주변국들과 그당시 유다백성들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와 하나님은 그러한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바냐의 관점은 1절에 나오는 스바냐의 족보에서도 잠시 옅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족보가 선지서중에서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8명의 선지자들은 가족에 대한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5명의 선지자들은 그의 아버지의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스바냐 선지자는 독특하게도 4대에 걸친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누구입니까? 종교개혁을 성공리에 완수한 히스기야왕입니다. 유대땅에서 우상을 완전히 없앤 장본인입니다. 스바냐는 지금 바로 히스기야때의 그 모습이 필요함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히스기야왕의 족보에서 시작하여 자신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앞둔 최고의 타락의 순간에 하나님이 스바냐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날과 하나는 남은자 입니다. 죄악으로 관영한 지금, 유다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음을 깨우처서 심판이 아닌 구원의 길을 걷도록하고, 그 길을 걸을 ‘남은자’들이 얻게되는 미래의 영광에 대한 약속을 선포합니다. 

먼저 오늘 1장의 말씀은 여호와의 날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날이 어떠한지는 2절에서 이미 선포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스바냐가 말하는 여호와의 날은 진멸의 날입니다. 그리고 내가 땅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라는 이 표현은 유다백성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노아의 때를 기억나게 합니다. 창세기 6장 7절에서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는 그 말이 바로 오늘 스바냐가 하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즉 스바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그 시점의 모습을 노아의 때와 같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때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창세기 6장 5~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죄악이 가득하고 사람들의 마음와 생각마져도 항상 악했다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수천년이 흘러 지금 스바냐의 시대도 그렇게 변질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백성들이 죄악에 거하고, 죄악된 것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3절에서 6절까지 나와있습니다. 3절에 ‘거치게 하는 것’은 우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3절은 사람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우상과 악인들을 전멸시키겠다는 말로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만물, 그중에서도 우상과 악인들에 미치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하는 이 엄격한 심판의 대상이 계속해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4절은 아직 척결되지 않은 남은 바알이 대상이고 그마림이 대상입니다. 그마림은 히브리어 케마림을 그대로 음역한 것으로 바알을 숭배하는 가나안 제사장들의 명예로운 호칭입니다. 즉 바알과 그의 추종자들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5절은 점성술사들과 여호와와 말감을 동시에 섬기는 이들이 심판을 받게 됨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말감은 암몬족속의 신이었던 밀곰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바알이 가나안의 제일가는 신이었다면 5절은 그에 상응하는 다른 우상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6절은 그러한 우상들에게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을 배반하고 버려버린 이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모든 추종자들이 엄격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을 것을 말해주십니다.

7절 이후는 여전히 주의 품안에 있는 것같은 이들에게 임하는 심판입니다. 유다공동체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들, 즉 표면적으로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 이들이지만 마음은 떠난 이들을 가리킵니다. 8절에서 말하는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이란 기득권층으로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우상숭배를 이용한 자들을 말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율법을 어기고 이방의 관습을 더 따라가고자 했던 이들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포악과 거짓을 일삼는 이들입니다. 율법으로 자신들의 삶은 잘 포장하였지만 그들의 행실은 완전히 반율법적이었음을 하나님은 지적하시고, 그들의 그러한 삶에 심판이라는 잣대를 내밀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대다수의 유다백성이 이와같은 삶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심판의 내용이 적용되는 그때가 오기전에 속히 돌이키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14절을 보시면 그러한 스바냐 선지자의 마음이 그려집니다. “여호와의 큰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이날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날에 우리를 구원해줄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유다백성들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은과 금, 즉 지금까지 자신을 부유하게 했던 것, 그것이면 해결할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한마디로 돈이면 다 해결할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의 심판마져도 기득권인 자신들의 힘이면 이겨낼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지금 유다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18절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은과 금으로는 이 심판을 물릴수 없습니다. 이겨낼수 없습니다. 지도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파워로도 이길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심판을 이야기 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삶을 살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때, 이 말씀 기억하면서 한번 말씀대로 살아보기를 바랍니다. 오늘 한번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을 순종으로 하나님께 드려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종국에 스바냐 선지자가 말하는 기쁨의 노래가 우리의 삶에 영원토록 울려퍼지는 온전한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풍성히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