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미가서6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l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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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6장 설교

찬송가 286(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오늘 말씀 미가서 6장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타락의 부당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락을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2: 이스라엘을 향한 촉구

3-5: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의 역사에 대하여

6-8: 여호와의 소원에 대한 백성들의 오해를 지적하고 여호와가 원하시는 공의와 인자에 대하여

9: 여호와의 심판의 선언

10-12: 이스라엘 사회의 타락을 지적하심

13-15: 타락과 악행에 대한 심판 예고

16: 이스라엘의 타락과 그에 대한 심판의 예고 강조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두 가지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구하시는 참예배는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6-7)

6-7절은 미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한 가닥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미가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이 선포되자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그들이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갈 것이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을까요?" 하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문하기로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몸의 열매를 드릴까" 이것으로 보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했을 때 속죄의 제사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사를 드리려는 행위 자체는 옳은 일이었으나 그의 마음은 그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함 받기를 원하는 의도 즉 하나님께 대한 마음은 전혀 없는 행위만 있는 제사였습니다. 그 어느 부모가 자식이 마음이 없는 사죄를 기뻐하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많은 헌금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없는 예배와 헌금은 하나님이 절대 받지 않으십니다. 용서가 없고 형제를 미워함으로 관계가 막혀 있는 가운데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와 헌금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3-24절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게 제물을 요구하신 것은 그들의 죄를 인하여 자신의 죄의 처참함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간음 사건 이후에 그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스러웠겠습니까? 그 때 그는 시편 51 16-17절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우리가 마음이 텁텁해지고 딱딱해지고 굳어져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도 모르게 습관화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상태를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우리의 딱딱한 마음이 무른 마음으로 변하고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우리를 다시금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가난한 심령 상한 심령을 우리는 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2. 하나님의 징계를 겸허히 받아 들이는 자가 됩시다(9)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 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외쳐 부르시는 대상인 성읍은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죄악의 심장부와 같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미가는 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외의 열매는 순종입니다. 반대로 경외의 반대는 불순종입니다. 경외하지 않으니깐 무시하고 듣지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부모에게 기어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근함과 단호함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아버지와 운동도 하고 바둑도 두고 베트민턴도 여러 활동들을 하다보면 친해지게 되는데 나도 모르게 슬쩍 부모님께 반말도 하고 나도 모르게 기어오르는 듯한 자신을 발견하여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아버지도 자신도 모르게 급박하게 정색하며 혼내시기도 하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때로는 부모님에게서 이렇게 하면 혼나는 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주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때그때 다르게 혼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당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유다로 하여금 징계하시는 것은 그때 그때 다르게 혼내는 인간과는 다르게 무소부재하시기에 전지전능하시기에 죄악에 대한 일관성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의 증거이고 신실하심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유다를 징계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징계를 작정하시면 그 주변 국가들을 일으키시어 혼내 주시는데 유다는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공의로운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당연히 보여야 하는 반응은 아버지께 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혼내는 아버지를 피하여 자신의 편을 들어줄 형제나 어미나 다른 친구에게 가서 자신을 하소연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인 것입니다. 아비로서는 배신감을 느끼고 질투를 느낄만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자신이 받아야 할 징계를 피하여 애굽과 같은 나름 힘있는 나라의 군대를 의지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분노를 사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마땅한 징계를 피하여 우리를 위하는 그 무엇인가에 기대고 회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생각하시고 걱정하시고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죽이신 하나님께 우리가 받을 징계도 달게 받고 반성하여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악의 문제로 인하여 아파할 때 우리가 의외로 다른 도피처를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는 사람에게 육신의 부모나 형제나 친구에게 배우자에게 기대기 이전에 우리의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도 아시고 보듬어주시는 주님께 먼저 고백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시편 94:12

 

말씀의 결론

1.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구하시는 참예배는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6-7)

2. 하나님의 징계를 겸허히 받아 들이는 자가 됩시다(9)

 

함께 기도

 

하나님께 대한 참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께 받을 징계를 겸허히 받게 하시고 다른 인생들에게 우리의 아픔을 해결해보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