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미가서 4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l 12,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찬송 :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찬송가 259장)

말씀 : 미가서 4장 1~13


어제 말씀의 마지막에 사회와 종교의 지도자들의 타락, 그리고 그로인한 하나님의 침묵과 시온과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이 예고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거기에 머무르고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오늘 말씀은 곧바로 이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은 4장의 시작이라고 보기보다는 3장의 결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1절에서 5절은 3장의 결론인 성전과 산이라는 주제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고, 3절은 3장 1절과 9절과 11절에서 다루었던 세상통치자들의 불의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공의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2절은 3장에 나오는 제사장의 그릇된 가르침과 대조되어 온전한 시온에서 나오는 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3장에서 4장 5절까지의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종말의 때에 예루살렘과 시온 성전이 온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것과, 세상 만민이 하나님의 길을 찾고 따르기를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종말의 때는 미가시대에는 실현조차되지 않았지만, 신약의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는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가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먼미래의 말씀이 아니라 지금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함께 5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며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오직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는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미가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한 말씀의 핵심이며,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받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은 미가시대의 우매한 이스라엘을 따라가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그러한 인생이 어떠한지는 분명히 제시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그냥 다짐한다고 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회개와 정결함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을 잊고 세상의 권력자들을 의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던 그들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보시면 하나님의 징계와 사단의 역사는 많이 다릅니다. 사단의 역사는 결국 우리를 무너뜨리고 좌절하게하고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지만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셔서 다시 새롭게 하시겠다는 분명한 뜻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0절에 그러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어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해산하는 여인처럼 극심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성읍을 떠나 들에서 야영하며 야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말은 극심한 고통이 점점 더 거세진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포로가 될때까지입니다. 완전한 절망의 때까지입니다. 인간적인 소망이 다 사라졌을때 까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때가 될때까지 아픔과 힘듦을 방관하십니다. 완전한 비움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움으로 주님은 우리를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비워진 마음에 정결한 주님의 복음만을 채우기를 바라십니다. 살아갈 집을 잃고, 나라를 잃고, 전쟁의 포로로 잡혀가는 것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십니다. 이유는 여전히 주님보다 다른 것을 보기 원하고 다른 것을 더 신뢰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습성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보면 극심한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셔서 순도 100%의 성도로 만드시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을 이겨냄으로 얻은 순결함과 정결함이 우리를 주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삶에 힘듦과 어려움과 고난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오늘 9절에서 말하는 미가선지자의 물음을 나를 향한 질문으로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어찌하여 너는 그렇게 큰소리로 우느냐? 어찌하여 아이를 낳은 여인처럼 괴로워하느냐? 너희가 믿었던 왕이나 자문관들이 없기 때문이냐? 아니다!~ 애초부터 그들은 죄인이고 너희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역사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이 질문에 먼저 맞습니다. 나의 삶의 주인이시요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라고 답변할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위에 우리의 삶을 다시금 올려놓고, 다시금 해석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를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마음과 그 생각이 어떠한지를 온전히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