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미가서 1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l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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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는 7장까지, 이스라엘 부패와 더불어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고발함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고합니다. 오늘 1장에서는, 유다의 여러 성읍들 명칭을 대가며 아주 구체적으로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10.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에서 베들레아브라는 티끌(먼지)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워드플레이로. 베들레아브라 사람들이 심판으로 인해 성읍 이름의 뜻과 같이 먼지 속에서 구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11. ‘사빌 주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에서 사빌은 '아름다운'혹은 '순결한'으로 나옵니다. , 심판으로 인하여 너희들 성읍의 이름과는 반대로, 벗은 몸으로 부끄럽게 될 거야.

 

11. ‘사아난 주민은 나오지 못한다고 나오지요. 그런데 원래 사아난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 이름과는 반대로, 심판과 전쟁으로, 적들이 공격할 때 너희들은, 겁을 먹고 성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체 성안에 갇혀 살게 될 거야!입니다.

 

15. ‘마레사 주민아 내가 장차 너를 소유할 자로 네게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여기에서 마레사'정복자' '승리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너희들을 정복할 나라를 내가 보내어 너희들의 본래 이름과는 달리 정복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아둘람'은 아시다시피, 다윗이 사울의 추적을 피하여 숨어있던 동굴입니다. 한마디로, 너희들이 지금까지 누렸던 부와 영화는 마치 다윗이 동굴로 피한 것처럼 묻혀지게 될 거야입니다.

 

그렇게 심판 받아 멸망하여 자녀들이 너희 곁을 떠나 포로로 잡혀 가게 될 것이니, 너는 독수리처럼 네 머리를 밀어, 너희의 능력 없음과 영광 없음을 한탄하라는 겁니다.

 

이는 다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고 5절에 꼬집어 말하면서 38절에서 나에게는, 주께서 주의 영과 능력을 채워 주시고, 정의감과 아울러,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짖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다고 분명 말합니다.

 

그렇다면 미가의 용기와 정의의 충만함조차 잘 없는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마음과 태도를 지니고 이 땅에서 살아야 할까요? 이 세상의 불의와 타락을 향하여 죄를 지적하며, 죄와 맞서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안타까워하며 살아야 할까요?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며 살라고 교회에서 말은 하는데, 전도서 3장에 재판하는 곳에도 악이 있고,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도 악이 있으며,

 

5장에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릴지라도 가난한 사람은 핍박을 당한다 했고, 그렇게 불의한 선지자와 왕을 몰아내면 또 다시 불의한 선지자와 왕이 세대에 걸쳐 나온다 하였고,

 

드디어 선의의 왕과 지도자 나왔지만 만약 백성들이 탐욕스러운 가치를 탐한다면 그 때는??

 

지금껏 수많은 의로운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오늘 8절의 말씀처럼 선지자 스스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애통하고 애곡하여 살았다 해서,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킨 세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분들도, 실패한 그 의의 세상을 지금을 사는 우리가 믿는 자의 도덕적 행함과 얄팍한 인간의 정의로 과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거나 또는 하나님의 심판을 유보시킬 수 있을까요?

 

저의 얕은 신학 지식으로서는, 아직까지 아닙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심판하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고백하는 거에요. 오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는 예수 이외는 없습니다. 미가가 하지 못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오직 예수님만이 요한복음 16, 십자가에서 드러내셨습니다.

 

어떻게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구약의 모든 말씀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의와 불의를 가려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하며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였던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도무지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미련한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이만큼 미련합니다. 그 십자가의 삶으로 저와 성도님을 부르셨습니다. 그 십자가가 새겨진 성도들의 삶을, 단순히 세상이 요구하는 정의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냄으로써 증명해내는 기독교로 우리를 불렀는지 아니면 나를 죽이는 능력으로써 십자가로 초대하셨는지는 길게 두고 볼 문제입니다.

 

오늘 하루도 미가의 외침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외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외침을 들으시고 그 십자가안에서만 참된 능력과 안식을 깊이 묵상하시는 복된 금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