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호세아 1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y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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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장 설교 

찬송가 438장(내 영혼이 은총입어)


제가 군복무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서울에서 치안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인 청량리 관할 경찰서에서 의무경찰로 근무를 하였습니다. 청량리 588번지에는 자신의 몸을 남성들에게 접대함으로 돈을 버는 직업 여성들이 대거 모여 있는 집창촌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2년간 복무하면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단속 근무를 나가게 되었었습니다한 시간 또는 두 시간씩 2회 또는 3회 정도 직원들을 달리하며 순찰 근무를 섰던 기억이 납니다.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성매매를 하는 것을 단속하기도 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신분증을 요구하며 검문검색도 실시하였습니다. 가까이서 그 분들을 오랜 시간동안 봐 오면서 느꼈던 것은 저렇게 멀쩡하고 예쁜 여자분들이 왜 저렇게 자신의 몸을 팔고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엔 저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시기였기에 그 분들을 그저 더럽고 저주 스러우며, 불쌍하고 나와는 완전 다른 죄인처럼 그들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 여성분들은 나중에 어떻게 결혼을 하려고 할까과연 결혼할 생각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직원 경찰분 중에는 심지어 직업 여성과 눈이 맞아서 사귀고 결혼까지 한 분도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직업 여성과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상상은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감당해야할 것들을 생각해보니 도무지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 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려보았습니다. 아무리 예쁘고 매력적인 여성이라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하였을 사람과 매일 밤을 같이 보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자칫하면 병에 걸릴 수도 있겠구요. 사회적인 시선 또한 무시 못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직장의 동료들 모임 가정끼리 만나는 모임도 어려울 것 같구요. 또한 자녀들을 낳아 기를 때에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창녀의 자식이라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학교에서 듣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말로 다할 수 없는 많은 깊은 고민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함 받고 성령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직업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교회에서 아무런 선입견이 없이 용납할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많은 문제들이 있어서 아무래도 직업 여성과는 결혼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이보다 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 이야기입니다. 결혼은 누구나 잘 해야 되지만 구약 시대 선지자나 제사장 등 하나님의 종들은 특히 결혼을 잘 해야 됐습니다. 반드시 깨끗한 처녀를 신부로 맞이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은 정말 이상합니다. 더구나 그가 어쩌다가 만나 하는 수 없이 코가 꿰어 결정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것이기에 더 더욱 이상합니다. 호세아는 분명히 거룩한 하나님의 종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명해 주신 신부감은 어떤 여자입니까? 음란한 여인입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합니다. 3절에 "이에 저가 가서 ... 고멜을 취하였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혼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형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호세아는 이상(異狀)한 형()과 한 것입니다. 많고 많은 여자 중에 하필이면 왜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하란 말인가? 호세아는 분명 자기 인생을 뒤흔든 이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심정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온 몸으로 눈물로 호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에 담긴 교훈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음란한 여자 고멜 : 여기서 음란하다는 것은 구체적인 음행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원문을 보면 복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음행을 상습적으로 행하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고멜이 직업적인 창녀였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름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고멜'은 본래 '' 혹은 '완전'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죄악에 완전히, 철저하게 물든 이른바 '걸레 같은 여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고멜이라는 구체적인 여인의 모습을 통해 당시 북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타락하고 범죄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호세아가 활동하던 때는 BC 8세기 중엽인데 여로보암 2세가 나라를 다스리며 번영을 이룩한 시대였습니다. 영토를 확장하고 국제 무역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정치, 경제적 부흥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바알신, 아세라신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였고 또한 자식을 낳습니다. 그런데 고멜의 음행으로 그 자식들이 뉘 자식인지 모릅니다. 요즘 같으면 유전자 감식이라도 하면 알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식들에게 차례로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들이 희한합니다. 좋은 뜻이 아니라 무서운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날마다 그 이름을 부르면서 호세아의 가슴이 얼마나 터졌을까? 사실은 호세아의 가슴이 터지기 전에 하나님의 가슴이 터졌습니다.

 

  그 이름들이 무엇입니까? 장남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3~5) 이스르엘은 지명인데 예후가 아합 왕가를 멸족시킨 곳입니다. 즉 킬링 필드(killing field)입니다. 그리고 '흩어 버린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심판의 예언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실제로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의 민족 말살을 위한 방법으로 이방인과 씨를 섞어 버림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그야말로 흩어버리는 일을 강행합니다. 장녀의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6) ''는 부정어이고, '루하마' '긍휼히 여긴다'는 말의 강조형입니다. 그러니까 로루하마는 다시는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역시 심판의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차남의 이름은 '로암미'입니다.(8~9) 이 이름은 가장 극단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최후의 통첩인 셈입니다.  

 

자식들을 이렇게 비참한 이름으로 불러야 했던 호세아! 저민 가슴을 부여 안고 백성들에게 호소하며 회개를 촉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호세아의 눈물어린 호소를 듣지 않았고 결국은 이 예언대로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실로 비극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도 회개치 않을 때 가차없이 심판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엄하신 공의 앞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렇게 부패하고 결국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죄 많고 부족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호세아에게 굳이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라고 하신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 주려는 의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그의 백성이 타락하고 범죄하여 징계하시기도 하지만, 결국은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북 이스라엘은 멸망 당해도 남 유다 백성은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7) 실제로 후일 바벨론에게 포로된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아질 것을 약속합니다.(10) 이것은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영적인 이스라엘, 새 이스라엘인 신약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두목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구속으로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루하마' '암미'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요, 사랑입니다.

 

  호세아의 이름도 그런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아, 여호수아 등과 같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헬라어로는 예수라는 이름과 동일합니다. '예수'란 마1:21 기록대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즉 '구원자'란 뜻입니다. 즉 호세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인 인물인 셈입니다.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했듯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죄인이라도 신부로 삼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요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3;16) 그것도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5:8) 

 

말씀의 결론 입니다. 

우리는 오늘 호세아서 1장을 통하여 적용해 볼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그 큰 사랑에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둘째,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말씀, 기도, 찬양, 예배의 삶)

세상과 벗되는 것이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4:4)


청량리 588 한 가운데에 가나안 교회라는 작은 교회 하나가 있습니다. 세상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버린 죄로 물들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창녀 고멜과 같은 우리,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벗하며 짝하며 살던 우리들을 위한 참된 안식처 회복의 장소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 밖에 없음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의 구원의 감격이 새롭게 되는 귀한 한 날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