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예레미야 23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an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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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제목: 참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예레미야 23:1-40)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예레미야 23장에서는 목자들에 대한 고발로 시작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여기서의 목자는 유다 사회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양들을 모으기보다 흩어지게 했다는 겁니다. 백성들이 화해하고 통합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양떼를 멸하고 백성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한 겁니다. 단, 디아스포라의 흩어짐의 개념과는 다른 의미의 흩으러 뜨림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된 나라에 살아서 우리의 정서와 체질이 하나 되기 보다는 분열에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통합에는 관심 자체가 없습니다. 오히려 편가르기에 훨씬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이 크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 시대나 지금 우리 시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기득권 상실을 염려해서 백성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에 대비되는 참 목자가 우리에게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 - 6절입니다.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의 이름이 ‘여호와 우리의 공의’입니다. 절대적인 공의로 세상을 치리한다는 겁니다.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면 소외도, 불평등도, 불공정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들로부터 사회가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선지자들과 제사장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9절 상반절입니다.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그리고 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또 16절이하입니다.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당시 선지자 가운데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에게 의지해서 백성들에게 예언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13절입니다.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그러니까 당시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바알에게 의지해서 예언한 겁니다. 하나님은 꿰뚫어 보셨습니다.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거나 믿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은 자기 마음으로 묵시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묵시라고 속이며 전했다는 겁니다. 혹시라도 자기들의 기득권이 상실될까 우려해서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계시가 아니라 자기 멋대로 평안하리라, 재앙이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속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늘 축복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축복의 말씀에 대해서 늘 배격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실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축복과 고난을 모두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필요하고 때로는 책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상황 가운데 가장 적절하게 우리를 때로는 사랑으로 또 때로는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의 이 시대는 하나님의 채찍이 많이 필요한 시대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리더쉽의 부재 상황을 통해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보아서도 하나님의 공의, 바로 채찍질이 필요한 시대임을 직감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 23장은 다른 장에서 보다 선지자와 제사장, 즉 말씀을 대언하는 자 하나님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들에 대한 징계와 책망의 말씀 일색인 부분이라서 목사로서 너무나도 읽기가 편치 않은 부분입니다. 


한 자매를 심방한 적이 있었는데, 목사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크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개신교의 지도자들의 타락상이 여과 없이 까발림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인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그 자매에 대해서 미안함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타락했다는 목사와 저는 그닥 다를게 없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단지 나는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시적으로 범죄한 것과 마음으로 눈으로 생각으로 짓는 모든 음란과 거짓과 위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예레미야 23장 말씀을 묵상할 때에, 죄에 대해 심판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 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채찍질 하시고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는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심으로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0절-22절 입니다.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죄로 인한 수치와 조롱 모욕, 징계는 비록 당시에는 매우 슬퍼보이고 저주스러워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는 참 소망의 흔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과 채찍질이 때로는 수치스러움 그 자체로 여기질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참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유일한 통로가 됨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함으로 우리 안의 죄악을 발견하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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