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예레미야 12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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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너 시험을 당해(찬송가 342장)
예레미야 12장 "악함의 해석"

여러분들은 현실에서 경험하는 일들과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르거나 완전반대의 경험을 하게 되었을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예를들어 말씀대로 살려는데 어려움이 오고, 오히려 성경적인 삶이 아니라 독한 마음품고 악하게 사는 것이 더 편안하고 더큰 유익이 온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그러한 상황을 실제로 보고 경험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바로 앞장에서 하나님은 악한 아나돗 사람들을 벌하시고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나돗은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성읍으로 예레미야의 고향이고,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성읍이었습니다. 이말은 아나돗은 레위인의 성읍으로서 하나님의 공의와 의로움을 이땅에 실현하는데 앞장서야하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나돗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전하는 예레미야의 외침에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에게 포로가 된 경험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지와 선지자를 배척했습니다. 본이되어야할 이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해하려고 하였기에 하나님은 이들을 벌하시겠다고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예레미야의 눈에 이들이 건재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삶과 신앙 모두가 다 악함에도 이들은 더 잘살고 더 편안하고 더 안락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던집니다.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2절에서는 "이 악한이들을 그렇게 하신분이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평가입니다.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멀다”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는 어떻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하나님 앞에서만 아부하고 있는 이 악한 백성들, 마음은 완전히 멀어진 이들을 왜 더 형통하게 하시고, 왜 더 안락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라는 질문과 한탄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이 악날한 모습이 결국 온 유대에 퍼지고 있으며, 온 유대백성들이 물들고 있습니다. 4절의 말씀을 보시면 그 결과로 땅의 모든 거민과 심지어 짐승들에게까지 재앙이 미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생각에 지금 이 악을 끊어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의 침묵, 아니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 하나님이 악함을 권장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때문에 모두가 힘들게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5절과 6절입니다.
“만일 네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두가지의 은유로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보행자와 경주하는 것을 힘들어하면 말과는 어떻게 경주하려느냐? 지금은 평안한 땅에 있는거야… 앞으로 요단강물이 넘치면 그 때는 어떻게 할려고 그래?'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예레미야가 질문하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더 경성하고 의인이 더 힘들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때는 주안에서의 악인을 넘어서서 유대인에게는 치욕이라 부를 수 있는 이방인에 의한 유대땅의 멸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지금의 불의를 하나님께 한탄하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아직 시작도 안했어' 라고 답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정말 무심한것 같고,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것과 같은 답변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 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7,8절)

이 말씀에 핵심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유를 버리고 던지고 넘기고 미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이 만물이 숲속의 사자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말은 유대백성들의 뻔뻔한 방항심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10절과 11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소유인 포도원을 헐어버리고 짓밟아서 황무지를 만들었음에도 이것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완전히 변질시켰는데, 뻔뻔하게 나만 바라보아 달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밀을 뿌려도 가시를 거두고 수고해도 소산이 없는 이유, 예레미야의 질문처럼 악인이 강성하고 형통하게 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것을 변질시켜버리고 완전히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는 유대인들, 그리고 전혀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이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계획을 진행하십니다. 15절에서 17절의 말씀처럼 변절되어서 갈피를 못잡는 것, 하나님의 소유를 황무지로 만들었던것을 뽑아내셔서, 먼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신후에 다시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16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바알에게 한것처럼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신앙적인 행위를 더 많이 하는것이 아니라 신앙의 모습은 지금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변질되고 잘못된 것은 완전히 버리고, 그안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되니 더 많이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의 이 말씀을 바라보며, 특별히 이 말씀대로 이루어진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을 적용해야하겠습니까?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악함의 부흥, 불의가 거세게 흥왕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수많은 교회가 생겨나고, 수많은 말씀이 선포되는데, 왜 공의보다 정의보다 불법과 불의가 더 편안한 삶을 살아가겠습니까?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해 해석해보면, 우리의 중심이 바로서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가로채서 우리의 마음으로 황폐시켜버리고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동일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최근에 우리교회에서도 많이 부르는 제이어스라는 찬양팀의 노래 Love never Fails라는 찬양의 가사를 읽어드리고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내 백성이 나를 떠나 돌아섰지만, 내 사랑이 내 백성을 포기못하니, 내 모든 것 내어주고 나 그들을 얻으리라.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돌아서도 그는 변치않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넘어져도 그 사랑 영원하네.”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온 중심이 돌아감으로 참된 주의 평강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이 세대속에서 악함의 부흥을 바라보며 중보할때, 외적인 요인 뿐 아니라 우리 내적인 모습도 같이 바라보게 하소서
2. 성탄의 기쁨을 주님과 함께 누리게 하소서
3. 수요기도회에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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