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예레미야 9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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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예레미야 9장 “오직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



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이 선지서의 메시지들은 부모의 마음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근래 며칠간의 본문이, 곧 예루살렘에 닥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그 긴박한 상황을 말하는 동시에 그 심판이 임한 이유와 원인을 설명했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볼 본문 예레미야 9장은, 이제 유다 백성들에게 내려질 바빌론 침략과 성전 파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해석하면서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2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를 곳을 얻는다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이제 곧 유다에 임박할 심판을 봐야만 하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슬픔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는 마치 눈물샘마져 말라버린 상태에서 “내 머리가 우물이 되고, 내 두 눈이 눈물샘이 될 수만 있다면 가련한 그들을 위해서 울 수 있을 것인데..”라며 임박할 슬픈 현실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2절에서 “멀리 사막 한 가운데라도 누군가 쉴 곳을 마련해 준다면 차라리 이 백성들로부터 멀리 떠나 그 상황을 보지 않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본문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통과 아픔을 담고 있지만, 사실 예레미야 자신만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로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지금 자신이 목도하는 현실에 대한 슬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가지고 계실 그 고통과 아픔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 사회 전체가 이토록 타락하여, 간음과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가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하나님을 떠난 그들의 삶이 진실과는 거리가 먼,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악한 상황이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3절의 마지막에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6절의 마지막에 “나를 알기 싫어하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한 선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하고, 또 알기 싫어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이미 과거에도 이러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에서 나타나는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가지고 나가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을 결국 법궤를 빼앗기고 전쟁에서 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기필코 안전할 것이라고 안위했던 예루살렘 백성들의 생각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할례를 받았기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신약시대의 기득권 세력들의 생각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를 믿는다 고백하고, 교회를 출석하는 것이 완전한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구원의 여정 가운데에 있고, 또 온전한 때에 이르기까지 이 선한 싸움을 계속해서 해 나가야만 합니다.


12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 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유다 사회는 그 부패와 타락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깊어져서 온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현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삶에서 진실함이 사라지고, 형제와 이웃이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으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속이며 비방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악한 사회로 변질돼 버렸습니다. 

이와같은 신앙의 깊은 오해 속에, 사람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 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화려한 세상의 풍조를 따라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10절에 온 땅이 멸망하여 불타 없어지고, 길에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어질 것이며, 

11절에 거룩한 땅 예루살렘이 무더기와 같이 되고, 유다 성읍들이 황폐해 질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도저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심판이 택함받은 선민 이스라엘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여 그들의 땅이 무더기와 같이 되고, 황폐해질 것을 예언합니다.

이어서 17-20절에는 심지어 전문적으로 죽음을 애곡하는 여인을 부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말인즉슨 이스라엘에 많은 죽음이 있을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입니다. 


19 이는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거처를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장소였던 예루살렘의 각 처소로부터 애곡하는 곡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지서를 읽어가며 직면하게 되는 이 끔찍한 메시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처음 선지서 본문을 볼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낯선 마음과, 그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서를 다시 읽던 그 어느 날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호세아 11장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여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이제 심판이 임박합니다.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은 여전하십니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오직 자녀들을 위해 어려운 형편속에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의 사랑의 마음을 오해하여, 내 마음의 완악함대로, 내 소견에 옳은대로 나쁜 짓을 행했던 어린시절의 저를 회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남의 물건에 손을 댔던 저를 향해 울면서 매를 드셨던 부모님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공의의 회초리를 드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투영되었습니다. 자녀를 혼내키시면서도 마음아픈 부모의 그 슬픔 마음이 제 안에 들어와 맺혔습니다.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닌 우리의 마음입니다. 

믿음은 입술에 고백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이고 앎에 그치는 것일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입술의 고백이 마음의 고백이 되어 다시 삶의 고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고, 우리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사랑의 회초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1. 혼탁한 세상 속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오직 주님만을 따르게 하소서.

2. 오직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 은혜를 깨닫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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