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예레미야 1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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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예레미야 1꺾이지 아니하리라.”


오늘부터는 이사야서에 이어 선지서 중 두 번째 책인 예레미야서를 묵상하겠습니다. 오늘 읽으신 1장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제사장이 아니라 선지자로 부르셨지요. 선지자로서 예레미야가 할 일은 예루살렘이 망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 타버린다. 이 백성은 70년 동안 바벨론에 가서 포로가 될 것이다. 대적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라.” 의 심판의 예언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사역기간 내에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되지요. 그러니 가슴이 터지는 겁니다. 창자가 끊어지도록 아프다 그럽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순종을 아시는지 10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하십니다. 한마디로, 건축하시겠다 합니다. 건축하기 위해서는 그 전의 집을 무너뜨려야만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집을 지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겉으로는 부서짐이고 깨어짐으로 보이지만 안으로는 회복이요. 다시 세우심입니다. 이방 민족의 깨뜨림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의 깨트림은 여기서 끝나질 않습니다.

반드시 세움까지도 포함하는 무너짐임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전반부까지는 모르니 예레미야가 우는 겁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슬퍼하던지 우는 지 지체없이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하십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못하나이다고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말하는 그를 데리고 11. “살구나무와 끓는 가마라는 두 가지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한편 예레미야에게는. 18.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시리라 하십니다. , 어떠한 박해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의 사역이 꺾이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처럼 예레미야가 전하는 예언의 말씀들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 와서 너가 잘못했다고 합니다. 그 입 다물라 합니다.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쫓김을 당합니다. 예레미야는 틀린 것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자리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껏 기존의 방식으로의 예레미야서를 읽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쉽게 / 우리의 시각을 단지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기에 그렇습니다. 신대원 시절 예레미야의 다섯가지 고백록을 가지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예레미야 한 사람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자면 저와 여러분 각각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예레미야의 사역으로 인하여 패역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작품이 되겠습니까? 이 질문자체가 모순입니다. 도무지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을 앞에 두고 지금 예레미야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는데 과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은 인간인 예레미야와 함께 하는 사역을 허락하시질 않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로 말미암아 먹고 사는 일에 목매달린 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자족은 우리 수준에서의 먹고 사는 일 정도의 국한됨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에서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간에 그리스도로 배부르는 자족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하여서는 이미 죽은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요구한 것은 돈이 아닌 17. 오직 빌립보 교인들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인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은 52장 내내 절대로 죄인인 예레미야와 손 잡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오늘 1장에서 나오는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심을 예레미야로 먼저 경험케 하시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의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의 날마다 부패하고 악한 이 마음이 십자가 앞에서 예레미야처럼 드러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로 드러나는 그곳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이 얼마나 귀한 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아는 자가 성도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예레미야가 18절의 말씀처럼 견고한 성읍이나 놋 성벽처럼 담대하게 될 수 있는 것이 그에게서 비롯하질 않음을 하나님께서 차근차근 배우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레미야의 이 삶을 통해 우리도 세상 앞에 담대하게 서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삶은 저와 여러분의 삶과도 같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주변의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을 돌이키시는 것이 아닌 저와 여러분을 먼저 돌이키실 것입니다. 무너뜨리시고 가만히 두질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그 무너진 자리 위에 새로운 것을 세우실 겁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실 겁니다.

 

그렇게 건축자이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깊이 묵상하신다면야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싱가포르에서의 삶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기에 예레미야처럼 꺾이지 아니하며 담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담대함이 오늘 화요일에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앞으로 계속되는 예레미야의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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