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도 까다로웠던 지난 주간의 성경 암송 구절(디도서 3:5, 살전 1:3-4)은 중생 (重生, Regeneration), 즉 거듭남의 무게를 함께 깨닫게 해주었던 것 같다. 한자의 重生이 "무거울 중"자를 썼듯,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결코 가벼이 대할 주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번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D형 큐티 (삼하6:1-11, 베레스 웃사)
- 우리 형제들 모두 웃사에 집중하여 나눔을 진행하였다. 과연 웃사가 그렇게 단번에 심판 받아 죽임 당할 정도의 잘못을 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중심으로 연구와 묵상을 나누었다. D형 큐티를 거듭하며, 23기 형제들 사이에 각각 역사담당/인물담당/지명담당 그리고 창의적인 질문 담당 등 각자의 성격(?)과 관심도에 따른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누어지면서 우리의 나눔의 깊이도 점점 깊어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궤를 수레에 실어 이동하고), 본인의 생각대로 본인의 힘과 능력을 의지(떨어지려는 궤를 자신의 손으로 구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하여 일을 진행할 때에, 웃사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묵상하였다.
- 그럼 다윗은 웃사의 죄악에서 자유할 수 있었을까? 다윗과 웃사의 가장 큰 차이는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 삶을 통해 뿌리 깊게 심겨 있었고, 웃사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참고: 유진 피터슨, Leap Over a Wall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웃사의 죽음을 통해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했던 다윗 -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회개한 후, 결국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그 궤를 다윗성으로 모신 다윗의 모습을 통해 교만함을 경계하고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순종할 수 있는 그 영성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거듭난 사람
- 중생이 없이는 믿음도 없는 것, 결국 중생이 있어야 우리가 그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고백할 수 있음을 배웠다. 우리의 거듭남은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선물, 은혜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 이 거듭남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는 마치 바람과 같아서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거듭남의 인생을 살아낼 때, 비로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라는 우리 삶에서 드러나는 거듭난 자로서의 열매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그 중생의 믿음을 고백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는 제자반 교육과 초등부 캠프 연극 연습시간이 겹쳐 잠깐 연습을 위해 외유(?) 해야하는 상황이 있었다. 중생을 공부하는 와중에, 하나님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연극 연습을 하며, 뭔가 현장실습을 하고온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모임 이후 23기 형제들이 모두 모여 저녁식사 회합을 가졌다. (우린 분명 목사님도 초대를 했습니다!) 제자반을 시작한 후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서로 확인하며, 또 이 시간을 함께 지나온 동지/동역자들이 함께 격려하며 힘을 주고 또 받는 그런 시간이었다. 아직은 제자로서의 삶이 익숙하지 않은 40대 꽃중년의 우리들이,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의 열매를 통해 온전히 거듭난 자로서의 삶을 살아내기까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를 응원하고 기도한다. 23기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