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독교 교리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1학년생이 된 느낌을 주일 오후시간마다 가지게 됩니다. 어리둥절,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2~3시간을 있다보면 신학이란 참 어렵지만 흥미롭구나 싶습니다.^^
D형 규티
입다는 흥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장로들과도 흥정을 하고, 하나님과도 흥정하듯이 서원을 한다. 이는 성공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공지상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서원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그렇다면 왜 히브리서는 입다를 의인으로 기록하고 있는가? 첫째로 입다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고, 또한 이스라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섰다는 점이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의인들이 완전한 모습이 아님을 기억하자 (e.g. 아브라함) 목요제자반에서는 입다의 딸의 생사에 대한 의견이 다양했다는데, 주일반은 모두 죽은 것으로 이해하고 큐티를 하였습니다. 형제들은 확실히 감성이 부족한듯 합니다. ㅎㅎ
6과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되돌아 보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신학적, 역사적, 논리적 논쟁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과 같은 다른 사건에 비해 깊이 생각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감격하고 사는가? 도전하신 목사님의 말씀과 함께 수업으로 들어갔다.
1. 역사적 사실
십자가의 역사적 사실성은 당시 삽자가형에 대한 자료와 많은 부분이 부합된다. 요약하면
1) 십자가가 무거워 타인이 지고가는 경우가 종종 있음
2) 옷을 제비뽑아 나눔
이러한 부분은 실제 십자가형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난 일들로 확인된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십자가형은 가능한 오랜 시간동안 고통을 주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인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이는 3일 후 부활이라는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보여준다.
2. 십자가형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듯이 십자가형은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으로도 고통을 당하셨고 영적으로도 하나님과 단절되어 고통당하셨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않음). 이러한 고통속에서 죽도록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죄의 댓가는 엄청난 고통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한 것이다.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이 절대로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깊게 생각하게 되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헬라 원어로는 “값을 다 치루었다”에 가까운 의미라고 한다. 즉, 예수님께서 정말 우리 죄값을 치루기 위한 대속제물로 오신 것이다. 이전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미래의 죄까지 용서가 된다는 것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 말씀이 값을 치루었다는 의미라면 좀더 이해가 명확해 지는 것 같다 (선불).
3. 십자가 죽음의 의미
예전에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라는 신앙서적을 읽은 기억이 난다. 책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십자가형을 선택할 필요는 없으셨다고 항변하고 있다. 다른 방법의 죽음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주는 멸시와 조롱, 십자의 고통을 친히 다 받는 길을 택하셨다. 이를 통해 죄의 댓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시고, 또한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끼게 해주시는 것이다.
죄아래에 있는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고통과 모멸, 절망을 경험하는 것을 선택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모임 마무리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교리로 배우지만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신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교리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신앙의 깊이가 깊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의 십자가짐에 감사하는 하루 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