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분노
(요나 4장)
여러분들은 얼마나 자주 화를 내십니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껴 보신적 있으신가요? ‘분노’라는 감정은 이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러나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할 때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은 오늘 날의 시대를 가리켜 ‘분노사회’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내면에 화가 쌓이고 쌓이다가 욱하고 폭발하는데,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하여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나도 아주 단단히 화가 나 있습니다. 1절입니다.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요나가 분노하는 이유가 뭐예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미워하는 철천지 원수 니느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한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결국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를 퍼붓고 죽고싶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요나가 분노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 모든 일들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도 이와같지 않습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이 나고 분노가 차 오릅니다.
하나님은 분노조절장치가 망가진 요나를 치유하여 주십니다. 그를 치료하기 위해 꺼내든 것이 ‘박넝쿨’입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서 요나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요나에게 박넝쿨은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박넝쿨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는 것에 감동하고 기뻐하며 분노했던 자신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만지심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치유는 ‘박넝쿨을 통한 위로’가 아니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곧 이어 벌레 한마리를 보내어 박넝쿨을 모두 먹어버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박넝쿨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세상은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장치였습니다. 박넝쿨을 주신 하나님께서 또 벌레를 보내어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셨습니다. 욥이 깨달은 진리..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라는 ‘여호와 주권’에 대한 진리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넝쿨을 주신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자 함이였습니다. 요나가 박넝쿨을 아끼고 사랑했던 것 처럼 하나님도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사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요나는 이 사실을 받아드리지 못했을까요? 그는 분명 머리로는 이해했을 것 입니다. 죄인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초신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지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 는 이것을 받아드리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가 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마음은 계속 미운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요나가 겪고 있는 딱 그 마음인 것입니다.
요나는 2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자신이 박넝쿨을 아꼈던 것 처럼 하나님이 요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고 아꼈다는 사실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한 직장인이 회사에서 미국으로 출장을 가라고 했는데, 자기 마음대로 한국으로 갔다고 해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그 직원은 바로 해고 당할게 뻔합니다. 요나는 해고당해야 마땅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들어가서 이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죽음에서 건져 부활 생명으로 그를 다시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자비와 사랑으로 자신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는지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놓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과거에 불순종했던 요나 자신의 모습은 곧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니느웨 사람들과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요나나 니느웨 사람들이나 똑같이 불순종한 인간입니다. 단지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 보다 먼저 은혜를 입었고 먼저 구원을 얻은 것 뿐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마음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또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와 맞지 않아 불편한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상사가 있을 수 있고, 동료들 중에 함께 일하기 힘든 스타일의 누군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 보실 때.. 존귀한 사람이다’. 사람은 각각 성격도 다르고 능력도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부족한 나를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그 마음과 시선으로.. 우리 주변의 연약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관계 맺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품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살아가게 하소서.
- 용서가 안되고 계속 미운 마음이 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