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호세아4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an 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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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몬: 호세아 4장

찬양: 진실하게 진실하게,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호세아가 활동했던 여로보암 2세의 시대는 부유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너무나 타락했던 시대였습니다. 얼마나 타락했는가 하면 2절에서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라고 말할정도로.. 정의와 공의는 온데간데 사라져버리고, 온갖 악으로 가득찬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피가 피를 뒤 이음이라.. 단지 개인적인 죄가 아니라, 사회자체가 피로 물들여졌습니다. 폭력이 만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타락하게 되었는지.. 호세아 선지자는 아주 정확하고 단호하게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실때, 어떻게 나타내십니까?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으로 나타내십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을 “인자와 진실”로 나타내시는것, 그것이 바로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1절에 말씀하시면서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라고 하시는 그 말입니다.

“인애” 즉 헤세드, 진실, 메에트가 없다. 하나님이 인애와 진실이신데,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니 인애와 진실함이 그들에게 없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인애는 헤세드란 무엇인가? 너무나 많은 말들 사랑, 인자, 인해, 자비 등등으로 번역되기에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삶을 통해 우리가 볼때, 헤세드는 바로 “변함없는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떠나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 변함없는 신실하신 사랑, 그것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진실함은 무엇이냐.. 에메트라는 이 히브리어는 진리라고도 하고, 정직이라고도 번역되는, 이 역시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창세기 24장 48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찾으러 가는길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그 바른 길.. 그때 쓰인단어가 바로 “에메트”입니다. 바른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끝까지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해주시는것, 그것이 바로 “진실”인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정직한 영을 회복시켜주세요.. 라고 시편 51편에 그가 우리아의 아내에게 간음을 범한 이후 하나님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정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그분이 나를 때려서라도 인도해주시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직인 것입니다. 에머트의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때려서라도.. 그의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의 백성이 더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더이상 그 사랑을 베풀지도 않으며, 진실하신 하나님을 잊고, 더이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이 망한 이유임을 호세아는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것은 머리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베푸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때려서라도 인도해주시는 그 진실하심으로 경험되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를 끝가지 사랑하며,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가 되고, 우리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한 공동체로 회복되어지길 바랍니다.


오늘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렸을 때, 그들은 그들 자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피로 가득하게 되었고, 피조물, 그 세상마저도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처럼 말이죠. 오늘 우리안에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찰때, 진실함과 인애가 우리 공동체안에 회복될때, 오늘 이땅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호세아는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린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번성하니”

즉 물질을 추구하는 인생,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해서, 얻었는제. 문제는 그 결과가 풍성해지거나,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범죄가 더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진짜 행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져다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인생.. 그게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제사장들이 마땅히 하나님께 속죄의 제물로서 드려져야 할 속죄제물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비참한 인생이 됩니다. 

제사장과 백성이나 다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추구하고 원하는 것, 궁극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에 있어서 다름이 없게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 외에 삶에서 돈을 추구하고, 부를 원하는 삶은 그들과 다르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도의 품격과 특권을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왜냐?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을 향향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10절.. 먹어도 배부르지 않게 되어지는 것.. 허무한 인생, 그것이 바로 죄로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 인간,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음행과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기고, 막대기에게 그들의 인생을 묻고 의지하며, 음행으로 가득해버린, 그런 하나님의 백성, 그들은 분명 부요했지만, 더욱 더 비참한 인생으로 멸망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깨달아야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앞에서 머뭇머뭇 거리는 백성들을 향해 805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싸우기 전, “가까이 오라”  말한 것처럼, 우리는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요?  그 엘리야가 가까이 오라고 한 후 보여준 “무너진 제단의 모습처럼” 무너진 우리의 이 비참한 현실을 말입니다. 깨닫지 못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깨달을 수 없기에 완전히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15절.. 바로 이 말씀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스스로 지키시기로 결정하시고, 신실하심으로 그 약속을 이루시는데, “남은 자”를 통해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길갈과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길갈과 벧엘은 우상을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행음을 통해 그 신을 만족시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으로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행음과 쾌락이 가득한 곳이 바로 길갈과 벧엘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와 처음 할례를 행했던 그곳, 길갈, 야곱이 천사를 보고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던 벧엘… 그런 그곳에 우상이 가득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곳에 가지말라는것입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 그러한 유혹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명령이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나를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고, 죄로 가깝게 하는 것, 우리안에 그 죄와 단절하겠다는 절연한 결단이 있길 원합니다. 죄가 아닌, 하나님과, 그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두번째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지어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앞에 “내가 죄를 다스릴 수 있다고” 장담하지 말라! 큰소리 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앞에 오히려 엎드려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고 힘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죄는 16절 “완강한 암소”처럼 강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요. 기도하심시요. “하나님 저는 연약합니다. 하나님앞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주님 나에겐 죄를 다스릴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요. 죄로부터 나를 건져주십시요” 이 은혜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렇기에 엎드림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주님앞에 엎드려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 하나님의 백성은 스스로 부와 더 많은 소유로 행복하고자 하나.. 그러나 가지면 가질 수록 더욱 더 불행해지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과 다를게 없는 우리,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인애와 진실함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로 인애와 정직함으로 살아가게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와 싸우십시요! 죄악에 대해 단호히 절연하고 결단하십시요. 그러나 그 결단만으로는 안됩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강하십니다. 그렇기에 엎드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로, 그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려분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하나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헤세드와 에메트의 하나님을 더욱 불들며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2. 죄를 멀리하겠다는 절연한 결단이 우리안에 있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과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3. 오늘 우리의 죄로 망가져 버린 세상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다시 이땅이 회복된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있도록 주여, 우리를 변화시켜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