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하나님
(호세아 1장)
오늘부터 호세아 말씀을 함께 묵상합니다. 호세아 말씀은 시작 부터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게 하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묵상하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는 방식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죄로 인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어 지는데, 호세아를 통해서 주신 예언의 말씀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데,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아무리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북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동시에 그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도 주십니다. 그 말은 또한 음란한 여인을 맞아 아내로 맞아라고 하실 때는 그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주신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마음에 고멜을 향한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 고멜이 첫째 아들을 낳는데, 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으라고 하십니다. 이스르엘은 지명이였는데, 이곳은 죽음의 골짜기였습니다. 과거 예후가 아합왕의 가문을 모두 몰살 시켰던 곳이 ‘이스르엘 골짜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는 것은, 분명 예후가 아합왕의 가문을 모두 죽일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셨던 예언이고, 그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따라 성취된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절을 보시면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라고 말씀하세요.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겠다는 말은 이스르엘에서 죽은 아합가문의 죽음을 예후의 집에서 찾겠다, 예후의 가문을 벌하겠다! 이런 말씀이거든요. 분명히 하나님 자신이 예언하신 말씀이고 예후는 그 말씀대로 행한 것 뿐인데, 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이유는 하나님이 예후를 통하여 아합 가문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기대는 더 이상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모습이죠? 더 이상 우상 숭배가 행해지지 않게 되었나요? 여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고, 또 온갖 음란과 패역한 죄로 가득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고멜은 둘째 딸을 낳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으라합니다. 그 이름의 뜻은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북이스라엘에 관해서는 ‘더이상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곧 이어 남유다에 관해서는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이스라엘인데 너무 차별하시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유다족속을 긍휼히 여기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족속을 통한 이스라엘을 구원 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용서하지 않으시고, 유다족속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구원을 행하시겠다는 의미이고, 그리고 그 방식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이어서 9절에서 고멜은 세번째 아들을 낳는데,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으십니다. 이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음란한 죄에 대해서 이렇게 고멜이 낳은 자식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곧 바로 이어서 하나님은 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1장의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방금 전까지 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 그들은 내 백성이 아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말씀하시다가 곧 바로 입장을 바꾸시더니 또 내가 이제는 이들을 용서하겠다, 내 백성이 아니라한 그곳에서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것이다, 이런 구원의 말씀을 전하세요.
무슨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손바닥 뒤집는 것 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하나님의 이런 모습은 정말 낯설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변덕쟁이 같은 모습이 이해되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1절입니다.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하나되어 한 리더를 세우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더 이상 통일되지 않습니다. 통일될수도 없는 것이 북이스라엘은 혈통적으로 10개의 지파가 보존이 안되어서 북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그 존재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여기서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인다는 말은 예수님을 통해서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모든 나뉘어졌던 것이 화해 되고 하나 된다는 말입니다.
손바닥 뒤집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유보되고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어질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백성에서 거절 되었던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드려질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뒤집는 역사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롬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북이스라엘 처럼 끝없는 죄악이 우리 안에서 올라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값으로 말미암아 죄인 되었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바로 이것,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반응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감사함으로 기쁘고 즐겁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 놓치지 말고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