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다니엘 1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an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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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다니엘 1장

찬양: 지금까지 지내온 , 돌아서지 않으리.


다니엘서 하면, 위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다니엘과 세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실 다니엘서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보다는 끊임없는 위험과 유혹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국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역사의 거대한 물결속에서,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백성을 통해, 궁극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약속하고 선언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거센 세파 가운데서도 힘겹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 내도록 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언약과 은혜의 이야기가 바로 다니엘서입니다.  


그러한 관점으로 다니엘서를 묵상해갈때, 오늘 거센 파도와 같은 세상속에서, 삶의주인이신 하나님을 믿으며, 오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반드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1-2절에 나와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전개될 모든 다니엘서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이며, 모든 인류의 역사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의 주석이라고 볼 수 있을만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적합니다. “여호야김이 다스린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다니” 


여호야김이 누구입니까? 여호야김의 아버지는 요시야왕입니다. 요시야 왕은 종교개역을 주도했던 몇 안되는 하나님을 경외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굽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자기의 아버지가 허망하게 죽는것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예레미야가 준 두루마리를 불태우고, 자기를 죽도록 내버려 둔 하나님보다 자기를 세운 애굽왕을 선택합니다. 그는 애굽왕이 세운 허수아비 왕이였기에, 애굽왕을 의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고,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왕을 의지한 여호야김 3년에… 그가 무시한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베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쌉니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는 수모를 당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패했다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손가락질 당하는 우리를 볼때, 어쩌면 지금 이들이 마주한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오늘 다니엘서의 저자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2절… “주께서 유다와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무슨 말입니까? 여호야김이 끌려가고,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그릇들이 그들이 섬기는 신, 그 신상앞에 널부려졌을때..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졌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 


그런데… “주께서 넘기시매.. “ 이말은 지금 무슨 말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 일을 허락하셨는가 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과 선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망한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의 백성을 돌이키기 위해, 그 복음이 온 열방에 선포되기 위해.. 그의 전의 그릇이 우상앞에 널부려지듯… 하나님은 낮아지셨습니다. 자기를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사람들은 예수가 실패했다고 비웃었지만, 그것은 사실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넘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 그들을 살리고자하는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이것이 우리에게 힘이고 소망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을 믿고 그 유혹가운데 묵묵히 그 약속을 믿으며 살아갔던 다니엘의 이야기..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야기인 것입니다. 


점성술과 꿈 해몽과 같은 바벨론 학문을 배우고, 궁궐에서 왕의 진미를 먹이며, 그들의 이름을 개명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없애려고 하는 그러한 바벨론의 거센 파도에서도..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유혹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 만약 뜻을 정했기에.. 그가 이길수 있었다 라고 한다면, 그건 어쩌면 매번 뜻을 세우고 넘어지는 우리에겐 위로보다는 절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뜻을 세우기 전.. 이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음을 다니엘서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에.. 그렇기에 우리가 뜻을 세울 수 있고 세워야하는 것입니다. 내일 넘어질 지언정.. 다시 일어서 그 싸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것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합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는다고 그가 부정한자가 아닌, 정결한자가 되는가? 그는 이미 바벨론 왕이 주는 집에서, 그들이 주는 옷을 입고, 이방인들과 함께 살며, 것 뿐만 아니라 다니엘 “여호와 하나님의 나의 심판자”라는 이름이 아닌, “벨드사살” “벨이 나의 삶을 지킨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는것”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구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아니 그런다고 세상이 머가 달라질 수 있는가? 또한 사실 그 결과도 “얼굴이 더 좋아 보였다”라는 것이 전부라면.. 그 결과도 너무 미미해 대단해보이지는 않는것이 사실이지요. 지금 다른 백성들은 나라를 잃고 가난과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뜻을 정하여 이루어낸 결과가.. “얼굴이 더 좋아 보였다”는 것이라면 그들의 뜻을 정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그 보잘것없는 결단은 단지 율법적인 것도 아니요, 세상을 향한 저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믿음의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미약하고 보잘것 없지만, 세상앞에 그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10대 소년이었던 그가.. 신앙을 지키고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왕의 진미를 먹으면 죄를 짓는것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다스리는 것은 당신의 왕인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나의 왕인 여호와 하나님임을 그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세속의 힘이 크고 거셀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가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길은 무엇인가요?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에 미미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작은 뜻을 정함으로, 세속에 대한 저항으로 보여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달라지는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내고 있음을, 희생과 절제를 통해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마음을 뜻을 정해야 합니다. 미약해보일지라도..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상이 다 그렇다고 말할지라도.. 2021년의 마지막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 삶의 현장에서, 가정과 일터에서 사회속에서 내가 해야할 그 믿음의 저항을 위해 뜻을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우리의 삶과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고백하며,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게 하여주시옵소서.
  2. 거친 세속의 물결속에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내는 삶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3. 아픔과 고통속에 있는 자들을 고쳐주시고 위로하여주시고, 코로나로 고통받는 곳곳에 주님의 위로가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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