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그 어린 주 예수 (찬송114장)
말씀 : 에스겔 42장 1~20
오늘 에스겔 42장은 교회가 성과 속의 구별을 허무는 것보다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내는 것이고 교회다운 거룩성을 가질 때 오히려 더 세상에 영향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어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새롭게 세워질 성전 조감도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 모습 가운데 하나님은 한 특별한 방으로 에스겔을 인도하십니다. 그 방의 이름은 거룩한 방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이곳 거룩한 방은 제사장들이 구별된 성물을 먹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음식을 먹는 곳이 구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방에서만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따로 구별되어 보관되어 있는 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방의 기능은 한 가지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제사장의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을 입고 그대로 성전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거룩한 방에서 환복을 하고 뜰로 나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방의 기능은 제사장이 성물을 먹는 곳이고 또한 제사장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제사장을 속된 것에서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의 영적 기능은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는 중재자요 통로입니다.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는 제사장이 영적으로 구별되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문제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깨끗하지 못하면 속된 것과 구별되어 있지 않다면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남유다가 망할 때 제사장들은 정결하지 못했고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이 그들 때문에 오히려 시험에 들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탐욕을 일삼았고 제사장들은 정치적으로 집단화되어 있었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의 영적인 장애물이 되었고 백성들을 걸려넘어지게 하는 돌뿌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만들어질 성전에서 너희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제사장이 더 구별되고 제사장이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옛날 에스겔 시절이나 오늘 이 시절이나 똑같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의 목회자가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성과 속의 구별을 허문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세속화되어져 있다면 교회가 얼마나 치욕거리가 되겠습니까? 또한 성도들이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다면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빛과 소금이 되어질 정도로 구별됨이 있어야 합니다.
고통받는 세상에 등대 역할을 하는 구별됨이 우리 교회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직장 생활을 위해서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크리스찬으로 살기 위해서, 삶이 예배이기 때문에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구별된 거룩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음주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하면 술을 먹을 수 있습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필요한 경우에 포도주를 마시라 했습니다. 금주 자체가 거룩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과 구별된 거룩을 내게 없어서 술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세상과 구별된 것이 없다면 우리는 거룩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집, 생활하는 것들이 세상 사람들을 실족시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전체의 동서남북 사방의 측량을 똑같이 하셨습니다. 16절에서 19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북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남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서쪽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측량하니 오백 척이라"
성전 동서남북이 정사각형이었습니다. 똑같이 오백 척입니다.
네모 반듯한 완전한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건물로써의 성전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전에 모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전해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온전한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개혁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그 연약함을 핑계로 거룩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힘들다고 주저 앉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도전할 때 하나님께서 동서남북 사방을 똑같이 완전하게 만드신 것처럼 우리를 온전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걱정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 다음 20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성전의 담 세상과 성전을 구별하는 담을 말씀하십니다. 20절입니다.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세상사람들이 교회와서 가장 놀라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것에 놀랍니다. 세상에서 차별받는 것이 신물나서 교회왔는데 교회에도 계급이 존재합니다. 직분이 계급화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또 놀랍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데 교회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해서야 세상과 교회가 구별될 수 있겠습니까?
성경적인 가치관이 교회에 뿌리 내리도록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세상적 가치관이 아니라 성경적 가치관대로 교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교회 모임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참여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도 내가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또한 교회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되돌아 보며 하루를 시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1) 내 신앙생활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것이 있는지 깨닫게 하소서.
2) 우리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교회가 거룩한 교회로 세워지도록 애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