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회복
(에스겔 41장)
오늘 본문은 전장에 이어 계속해서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성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새로운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그 성전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이 모든 것을 낱낱히 측량해서 기록하라고 말씀합니다.
에스겔이 처음으로 환상 중에 성전을 보았던 때는 에스겔8장에 나오는데, 오늘 본문의 시점으로 부터 20년 전이였습니다. 그 때 에스겔에 보았던 성전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성전의 모습이였죠. 성전 안에는 멸망의 가증한 것들로 가득한 모습이였습니다.
에스겔이 그 환상을 보고 6년 후에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게 됩니다. 유다의 패망은 6년 전에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듯이 성전에 가득한 우상 때문이였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40장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는데, 이 성전의 모습은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돌아와 그 안에 가득히 임재하는 성전에 대한 환상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더 정확히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상징적인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에스겔이 보았던 이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은 성경의 모든 내용중에 가장 난해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에스겔이 본 이 성전은 어떤 성전인가! 이 성전은 역사적으로 또 문자적으로 성취되고 세워질 성전의 모습인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내용을 역사적인 내용으로 봐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20년전에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 성전안에 가득한 우상들,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거룩한 성전에 가득한 모습들… 이 환상은 실제로 역사 속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6년후에 유다는 바벨론에 패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오늘 에스겔이 본 새로운 성전, 다시 재건될 성전에 대한 환상은 아직 역사속에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와같은 성전은 지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후에 이런 성전이 지어질 것인가! 이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의 모습이 우리가 고대하는 새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인가! 물으면.. 사실 고개가 갸우뚱됩니다. 왜냐하면 에스겔이 본 이 성전의 모습은 너무나 지금 우리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가 하면은 이 성전 안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짐승을 씻는 장소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짐승의 희생 제사가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만들어주신 율법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의 희생 제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제 더이상 드려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성전이 다시 재건된다면.. 그 끔찍한 동물 제사를 다시 드려야 된다니.. 이건 구속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어떤 학자들은 이 짐승의 희생 제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글쎄요. 그런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손과 발에 못자국과 허리에 창자국이 선명한 예수님을 눈 앞에 두고 보는데, 어떻게 짐승의 희생 제사를 다시 드려서 그 분의 십자가 죽음을 기념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해석 같습니다.
우리가 구속사건을 이해할 때에.. 시간 위에 역사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긴 하지만 그 의미는 시간을 초월하여 적용되기도 하고 성취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에스겔이 20년전에 환상 중에 보았던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가는 성전에 대한 환상도 역사적으로 이미 성취가 된 일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유다가 멸망한 일도 BC586년에 분명히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사건은 지금도 일어나고 성취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단회성으로 한번 성취되고 끝나는 예언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거룩한 성전에 서는 것’은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거룩하다고 하는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멸망은 세상 종말의 때에 알맹이 없는 쭉쩡이는 가라지와 함께 불에 던져질 것이라는 말씀 처럼.. 유사 그리스도인은 모두 심판 받아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유다의 멸망은 역사적으로 이미 성취된 사건이지만, 의미적으로는 아직 성취되지 않는 사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에스겔이 보고 있는 성전의 의미도 그렇습니다. 이 성전이 역사 속에 있었던 성전이였느냐! 또는 이후에 이런 성전이 세워질 것이냐!의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구속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에스겔이 보았던 이 성전의 회복,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성전의 모습, 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닿는 곳마다 소생케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등.. 이 모든 내용을 역사 속에 성취시켜 나가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이 성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하고 품어야 할 마음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던 그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을 보는 것을 꿈을 꾸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지금 마음이 벅차 올랐을 것입니다. 그가 20년전에 완전히 더렵혀진 성전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 후로 유다가 멸망하고.. 얼마나 우울하고 힘든 세월을 지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무너진 성전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시고, 그리고 정방형의 온전한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실 때.. 감격의 찬양이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요?
오늘 우리가 그 에스겔의 경험을 동일하게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바로 그 교회, 그 교회를 나도 발견하고, 나도 마음에 품고… 그 교회가 나를 통해 세워질 것을 꿈꿀 수 있길 바랍니다. 교회는 목사나 장로, 중직자들만 꿈 꿔서 새롭게 되고, 성경적인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이 보여주는 바른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마음 속에 그려져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눔과섬김의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꿈꾸고 함께 소망했으면 좋겠습니다.
-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소서.
-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바로 그 교회를 나도 소망하게 하시고, 우리 나눔과섬김의교회가 바로 그 교회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