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예레미야50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Oct 15,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찬양 : 하나님의 진리 등대   (찬송510장)

말씀 : 예레미야 50장 1~46


가정에서 사춘기 자녀와 부모가 대립할 때 아버지가 자녀를 다루는 방식과 어머니가 자녀를 다루는 방식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때론 아버지는 강하고 또 준엄하게 자녀를 나무라지만 그 나무라는 것이 자녀를 진심으로 순종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품어주고 안아주고 이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의 뜻대로 자녀가 따라오는 것도 우린 자주 경험하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부드러움이 자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자녀를 설득 시킵니다.

무조건 강하다고 좋은 것이 아님은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40장에서 잘 드러납니다. 강하기로써는 세계 열방 가운데 가장 강한 나라였던 바벨론이 멸망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나라들 가운데에 전파하라 공포하라 깃발을 세우라 숨김이 없이 공포하여 이르라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은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은 부스러진다 하라"


바벨론의 두 신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벨과 므로닥입니다. 

벨은 주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고 므로닥은 태양신의 젊은 황소라는 뜻을 가진 신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굉장히 사랑했고 굉장히 많이 섬겼던 두 신들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신들이 바벨론이 망하는 그 날에 무너지고 부서져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사실 고대의 세계에서는 한 나라가 망하면 그 나라를 지켜주던 신들이 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벨론이 망하던 그날 바벨론 사람들이 숭상하고 섬겼던 바벨론의 두 신들이 완전히 무너내려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벨론이 어떤 나라입니까? 세계 열강의 패권을 가졌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몽둥이로 선택되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고 하는 나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심판했던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남유다, 이집트, 그리고 블레셋, 두로와 시돈, 모압과 암몬과 에돔을 비롯해서 수많은 소수민족까지 다 그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벨론이 하나님께 심판 받아야 되는 운명에 처해졌을까요? 그건 바로 그들의 교만때문이었습니다. 31절과 32절을 보시겠습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리니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키리라"


그들은 굉장히 강력했기 때문에 교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토는 넓었고 국민들은 많았고 군대는 강력했으며 그 강력한 군대가 가는 곳마다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날이 갈수록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온전히 잊어버리고 그들은 완전히 교만한 자가 되어서 약탈하고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살았습니다. 

자비한 마음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그들의 교만으로 보셨습니다. 

교만은 굉장히 무서운 죄임에 틀림없습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보다 높은 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앉아 있습니다. 나보다 더 높은 분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결국 교만의 죄 때문이고 바벨탑을 쌓아서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한 것도 결국은 교만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교만해서 바벨탑을 쌓으려 하는 자들의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반드시 멀어지게 되는 가장 본질적인 죄입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죄가 파생되어 나온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교만했던 바벨론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35절에서 3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칼이 갈대아인의 위에와 바벨론 주민의 위에와 그 고관들과 지혜로운 자의 위에 떨어지리라 칼이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 칼이 용사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놀랄 것이며 칼이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과 그들 중에 있는 여러 민족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여인들 같이 될 것이며 칼이 보물 위에 떨어지리니 그것이 약탈되리라"


아주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칼이 위에서 떨어질 것이라! 

칼이 위에서 왜 떨어진다고 표현했을까요? 바벨론은 그들 위에 존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칼이 위에서 떨어진다는 건 그들 위에 누군가가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위에 좌정하고 계셔서 교만한 자들 위에서 칼을 던져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바벨론 그들은 그들 위에 어떤 존재도 없다고 여겼는데 위에서 떨어지는 칼날을 어찌 상상했겠습니다. 상상조차 못했으니 그 칼날을 피할 재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과연 교만하게 살고 있다면 다시금 돌이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했다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었느냐가 우리 인생에 성패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는 언제든지 멸망당합니다. 


우리 머리 꼭대기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이 내 위에 좌정하고 계셔서 나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 내가 아무리 세상의 권세와 지혜를 가진 자로 산다하더라도 내 위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지혜로운 삶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만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사도도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던 믿음의 사도임에도 자신을 만물의 찌꺼기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많은 일을 이루면 이룰수록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던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나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복되고 귀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시며 이번 한 주 주 앞에 살아가시면서 우린 교만한 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언제나 붙들고 의지하고 무릎꿇고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깨닫고 듣고 실천하며 사시는 지혜로운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1) 얼마나 큰 일을 하고 많은 업적을 남기느냐 보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인생을 사는 지혜를 얻게 하소서.


2) 많은 일을 행하고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비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Articles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