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문: 예레미야 41장
찬양: 오늘 이곳에 계신 성령님,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40장과 41장은 예루살렘 함락 후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유다공동체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40장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가는 그로서는 더욱 편한 길을 선택할 수있었음에도, 예루살렘에 남기를 결정합니다. 진정으로 불쌍한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이들보다 바로 그들었기에..그는 그곳에서 남아 사명을 감당하기로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남겨진 자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바벨론 왕은 그다랴를 그곳의 총독으로 세웁니다. 하나님은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셔서.. 그다랴와 같은 신실한 사람을 세워주셨습니다. 11절에 보면 “포도주와 여름 실과를 많이 모았다”는 말은.. 다음세대에 대한 준비를 의미하고, 그의 통치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긍휼의 울타리안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역사가는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신실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에게도 치명적인 실수가 있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신하였던 요하난의 말을 가볍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당신의 목숨을 취하려 하니 내가 먼저 그를 가서 죽이게 허락하소서”라는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말을 믿지 않았고, 만약 그가 하나님께 이 말이 진실한 말인지 물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하게 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오늘 41장에 이르면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에 가서 그다랴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그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었던 유다인들과 갈대아, 즉 바벨론의 군사들을 역시도 죽였습니다.
과연 그다랴와 사람들을 죽인 이스마엘과 무리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성경은 그다랴를 왕의 종친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그가 다윗 왕실의 사람으로서 다윗의 후손이 아니었던 그다랴의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았던 즉 민족주의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요하난과의 권력투쟁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요하난과의 권력투쟁이든, 맹목적인 민족주의였든.. 그의 잔혹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5절에 보면 80명의 순례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아마도 예루살렘의 비극을 듣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들을 학살하는 끔직한 일을 버립니다. 그다랴 아래에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던 공동체는 이로 인해 다시한번 혼란을 겪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요하난이 듣게 됩니다. 이를 듣고는 요하난과 군대장수들이 이스마엘을 응징하기 위해 추격합니다. 그리고 기브온 물가에서 그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백성들이 요하난을 보고 기뻐하였고, 그들은 이스마엘에게 등을 돌리고 요하난 편에 선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마엘과 그의 신복 여덞명은 그 길로 도주하여 암몬땅으로 도망 가게 됩니다.
요나난과 이스마엘과 군대 지휘관들이 바베론의 총독인 그다랴와 그의 군인들을 살해하였기에, 바벨론이 자신들을 보복할 것이고 생각했습니다. 그 보복을 두려워하여, 유다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애굽으로 가고자 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마지막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세명의 각기 다른 어쩌면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등장하지요.
그다랴, 이스마엘, 그리고 요하난…
신실했으나, 신하의 말을 주의깊게 듣지 않았고, 무엇보다 영적인 지각력이 부족했던 그다랴..
이스마엘, 맹목적인 민족주의 신념속에 잔인한 학살까지 서슴치 않았던 사람
요하난, 지혜로운 방법으로 그다랴를 설득하지 못했고, 후에 이스마엘을 쫓아 낸 후, 다시 애굽을 향함을 선택함으로 공동체에 궁극적으로 혼란을 불러온 사람..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은.. 바로 각자의 신념가운데 열심이 있었으나, 그들에게.. 무엇이? 바로 영적 분별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한사람 지도자가 영적 분별력이 없음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적 분별력입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지 인간적인 열심만이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 즉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이전에.. 바로 그분의 음성, 즉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할 용기를 얻기 위한 기도의 시간, 골방에서의 기도가 어떤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가지 어려움과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서고 있는 것은 단지 어려움 그 자체보다는 그 가운데 있는 영적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의 어려움, 개인적인 어려움. 경제적인 일터의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 그 어떤 어려움이든지.. 우리는 싸움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 이면의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부모라면, 우리는 무엇보다 더욱 더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충만해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지도자라면, 목사라면 장로라면, 집사이고, 가정총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무엇보다 영적 지각력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더 말씀앞에 서야하고, 기도로 엎드려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속에서 이들이 마주한 혼란의 시대는 마치 오늘 우리의 시대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속에, 여러가지 어려움속에 많은 나라들은 갈팡질팡하고 그 속에서 우리 또한 허우적 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의 문제, 세계 기후의 문제, 경제 양극화의 문제.. 그래서 다들 자기의 생각과 소신에 따라 이것이 맞다! 저것이 맞다라고 외칩니다.그에 따라 사람들은 니편 내편으로 나누어지고, 혼란함은 더한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는 어떤것도 정말 그들이 말한것처럼 우리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혼란함속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바로 영적 분별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어려움, 일터의 어려움, 경제와 관계의 어려움이 있다면, 오늘 주님의 말씀앞에 귀를 기울이고, 더욱 더 기도로 엎드려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 주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 문제의 실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단지 보이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전쟁속에 있음을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 주님. 우리에게 영적인 분별력을 허락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로 엎드리는 삶, 엎드릴때,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을 경험케 하여주시옵소서.
- 오늘날 혼란에 가득한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영적 분별력을 통해 작은 믿음의 순종을 하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