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 488장)
말씀 : 예레미야 39장 1~18
오늘 예레미야 39장을 보면 선한 행위를 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행위를 한 사람의 마지막을 하나님이 끝까지 기억하시고 책임지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남유다가 결국은 망하는 장면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습니다.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결국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을 모세의 영도아래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끔 인도해주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신정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같은 위대한 왕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날로 날로 확장되고 그곳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을 했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렸고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통과 소통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위정자들부터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 나라는 반으로 쪼개어집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되고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참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할 왕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습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결국 시드기야 왕은 파선한 난파선의 선장이 되어서 배를 버리고 도망간 비겁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나라가 망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유린당하는 이때에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끝까지 결사항전하고 지켜야 될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비겁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오늘 본문 5절에서 7절에서 나타납니다. 6절과 7절을 읽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군사를 풀어서 결국 그를 생포합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서 왕자들을 남김없이 다 살해했습니다. 아버지의 눈 앞에서 자식이 죽는 걸 보는 그 아버지의 고통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이 일이 끝나고 나서 왕의 두 눈을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합니다. 그리고 마치 짐승처럼 그를 끌고 바벨론으로 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결정장애에 빠져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그리고 친 바벨론 파와 친 이집트 파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될지 모르는 미련하고 불쌍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백성들과 자신의 살길을 도모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람을 두려워했고 사람들에게 조롱 받을까봐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을까봐 이것이 두려워서 결정하지 못했던 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결정하십니다. 그의 삶에 마지막 결론이 이런 비참한 결말이었습니다.
우린 이렇게 살아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자리에서 서고 우리에게 심판의 날이 곧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그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너는 정말 수고하였구나. 하나님의 수고의 음성을 하나님의 칭찬과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생동안 삶을 살아가는데 마치는 그 날에 하나님께 버림받는 미련한 백성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난리 통에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본문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점령군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합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했던 선지자가 있는데 그가 예레미야이니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고 그가 어떤 말을 하든지 그의 말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가 망할 때 선지자 예레미야를 기억하셨습니다. 그가 평생동안 이 나라에서는 대접받지 못했고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항상 돌팔매질 당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항상 모욕과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나니 오히려 이방인의 왕이 이방인 점령군이 오히려 그를 선대하고 도우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고 말씀을 예언한 선지자여서 이렇게 선대받는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엉뚱한 사람 한 사람, 우리가 전혀 기억하지 못한 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억하심바가 되었습니다. 15절과 16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 18절도 읽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구스 사람 에벳멜렉을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망하는 이 때에 너는 반드시 가서 구스 사람 에벳멜렉을 데려다가 그를 살펴주고 돌보아 주어라!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 어떤 사람입니까? 전장에 38장에 보면 그는 목숨을 걸고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사람들에게 매맞고 그들에게 많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진창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성 안에는 떡이 떨어져서 진창에 그대로 두면 그 오물을 뒤집어 쓰고 예레미야는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구스 사람 내시 에벳멜렉이 그 모습을 보고 왕에게 가서 간청하고 애걸했습니다. 이 사람을 그냥 두면 죽을 수 밖에 없으니 그를 살리시고 살펴주시고 건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건져주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시였습니다. 내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성전에도 출입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지위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마치 개처럼 취급받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심판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건지라고 하셨고 그는 마지막 날에 온전한 생명을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왕이었던 시드기야의 마지막과 내시였고 이방인이었던 에벳멜렉의 마지막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린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 신분이 어떠하든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명예와 물질의 정도가 어떠하든 그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런 효력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되고 정결한 삶을 살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만 우리에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부디 우리가 우리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길고 긴 우리의 인생, 하나님 보시기에는 찰나와 같은 100년 남짓한 이 인생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역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선한 양심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거리낄 것이 없는 믿음의 선택을 하고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1) 우리가 가진 재산과 명예와 권세로 심판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실하게 살았는가로 심판받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 마지막날 하나님 앞에 심판받기도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사람들 앞에서 평가받게 하십니다. 지금 현재 삶을 아름답게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