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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레미야 33장

찬양: 욥의 고백,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하나님께서는 32장에 예레미야에게 “땅을 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망해져 가는 땅을 사라는 것은 그 땅이 회복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요 약속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그는 17절에 “슬프도소이다”라고 탄식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앞에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였지만, 그럼에도 탄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늘 1절이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 있을 때에”

“아직”이라는 이 말한마디, 그리고 두번째로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첫번째 하나님께서 “땅을사라”고 말씀하신 이후에.. 여전히 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으면, 소망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갇혀있습니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으나, 여전히 누가보아도 나아질 기미도 없고, 그앞에 그저 그는 무기력해 보이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이라”


그는 32장 15절부터 하나님앞에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그는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그런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예레미아야 바로 그거야..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거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무기력하다고 생각할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방이 꽉 막힌 감옥의 벽 밖에 보이는 것이 없을때, 우리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그에게 말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여기에서 특징은 “무엇을”이라는 목적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냥 허공에 부르짖어라가 아니라, “내게” 부르짖으라라는 분명한 대상이 주어집니다.


왜 하나님은 특별히 “무엇을”이 아니라, “누구에게”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결국 우리는 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까.. 라는 질문인 것이지요. 그것은 2절이 그 대답을 보여줍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우리가 기도해야할 대상,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에게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자신을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서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Maker, fomed establish, 이 단어들은 모두 창세기 2장 3장의 창조사역을 기술할때 사용하던 어휘들입니다. 즉 그는 어떤 하나님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청년들과 “교회오빠”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암으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던 믿음을 보여준 이관희 집사님의 삶속에서.. 그 영화는 그 남겨진 어린 아이, 4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와 아빠가 함께 말씀을 암송하는 한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인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이해할 수 없는 죽음과 그 고난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집사님의 삶속에.. 그럴수 있고,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그 다큐의 감독은 그냥 이 한마디 말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던 이유.. 그는 창조주시기 때문..


하나님은 “나에게 부르짖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그 약속을 붙들고 주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가 창조주라는 사실을 아는 이상 우리는 부르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달콤한 사탕과 젤리를 좋아합니다. 먹으니깐 자꾸 살쪄요.. 근데 한국에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살이 좀 빠진거에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아이들이 사탕을 달라는데 안줬다는 거에요.. 어떻게 안줬냐 물어보니… 안사놨더니.. 아무리 달라고 해봤자 없는것을 아니.. 떼를 써도 없으니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는 더이상 달라고 안하더라!는 것입니다.


아~ 이게 바로 진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능성이 없다면 떼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목숨을 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할 수 있다면, 그가 고칠 수 있는 의사라면, 그리고 내가 죽을 병이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숨을 걸고 떼를 써서라도 고쳐달라고 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주시는 응답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 크고 비밀한 것에 대한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4절에 보십시요. 4절은 바벨론이 그들을 무너뜨렸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이것을 하나님은 머라고 하시는가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누가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한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요. 반전이 일어닙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동시에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를 고치고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부르짖는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고쳐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3절까지는 바로 그 하나님 고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고치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은.. 그저 언젠가 죽을 우리의 육신의 몸에 대한 회복만을 단지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죄로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죄인의 본성을 고치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더욱 더 궁극적인 목적이요, 우리가 받은 가장 크고 궁극적인 은혜라고 한다면.. 14절부터 26절까지는 바로 이 크고 비밀한것,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15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바로 오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17절에 보면 그는 우리의 영원한 왕이요, 18절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나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를 다스리시고 돌보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중보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아침에 이 사실을 굳게 믿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슬프도소이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 그대로 주님앞에 쏟아놓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반드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오늘 우리의 마음을 정직히 고백하며 주님앞에 쏟아놓는 기도를 드리게 하여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2.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놓치 않게하여주시옵소서.
  3. 단지 육신의 바램과 치유를 넘어,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같을 때에도.. 이해할 없을때에도 우리를 고치시고 돌보시는 영원한 왕이요 제사장 이신 하나님을 소망하고 바라보는 믿음을 같고, 사명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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