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42장
찬양: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자
이사야 40장과 41장에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회복”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위대한 회복의 이야기가 누구를 통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런 기대감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1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 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하나님께서 이 위대한 역사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종을 세우시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회복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회복을 이룰 하나님의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예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을 주신 분, 그 하나님의 종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때에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셔서 예수님가운데 임하시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임한자라는 것,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종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다 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영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겐 바로 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자라는 것이고, 즉 우리는 하나님의 종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나님의 종인, 교회인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위대한 회복을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적으로 보면 더 대단해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은 학벌을 가지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세상의 힘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자들을 통해서 그 위대한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 그 영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기도제목을 물어본다면, 건강? 앞으로의 비전? 물론 그것도 저의 기도제목입니다. 그러나 가장 첫번째 기도제목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목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하나님의 위대한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갈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의 기도제목은 “성령 충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아침에 다른 어떤것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하나님의 종이 그 위대한 역사의 회복속에서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절은 말합니다. “이방에 정의를 베푸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땅에 오셔서 하신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일의 궁극적인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슨말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은 이땅에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 그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정의가 베풀어지는 나라”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화두는 “정의”입니다. 과연 정의로운 나라인가? 맞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정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것이지요.
정의는 무엇입니까? 정의, 성경에서는 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의란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것, 그 사람의 삶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성품에 합하여진 상태가 바로 “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지요.
즉 정의는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의인은 없으되 하나도 없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도, 이웃을 사랑하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그 의는 무엇입니까? 의라는 말 속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바로 “심판”이라는 의미가 있지요. 그런데 그 우리가 받아야 할 그 심판을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곤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결국 정의는 무엇을 이룹니까? 사랑을 이룹니다.
이방에 정의를 베푸는 것은 정의를 통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따라, 이제는 우리가 그 정의를 통해 사랑을 이루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에, 불의한 세상속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정의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삶으로서 정의가 베풀어지는 삶.. 오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의롭게 된 우리임을 깨닫고, 그 정의를 이 땅에 추구하며 베풀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인 우리의 사명입니다. “정의”로운 사회가 나라가 되길 세상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더욱 더 사랑으로 그 하나님의 의를 이땅가운데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은 그 종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범위와 방식에 있습니다.
그 종의 사역, 즉 정의를 베푸는 것은 누구에게 입니까? “이방에게” 즉 모든 사람에게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의는 단지 우리교회사람들과 우리 가족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믿는자든 믿지 않는 자든, 상관없이 모든 자들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정말 이렇게 정의가 베풀어질 이유가 없을 것 같은 자들에게까지도 우리는 정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지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가족들, 직장 상사들.. 그들에게 우리는 정의를 베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를 회복해가는 그 위대한 역사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의가 베풀어지는 방식은 무엇이냐..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느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정의를 베푸신 방법은 힘으로 우리를 꺽으신 것이 아니라,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연약한 우리를 향해 참으시는 사랑으로 포기하지 앟는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정의를 이루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세상의 힘이 아닌 온유함으로 세상을 회복해나갑니다. 바로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의 사명을 따라 하나님의 종이 된 우리는 온유함으로 정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지막 이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7-8)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일까를 하나님앞에 묵상하면서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신 그 종의 사명, “정의를 베푸는 삶”을 가슴에 새기게 그 십자가의 온유함으로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켜 나가는 우리가 되기리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주님 우리를 주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우리에게 주신 의를 따라, 정의를 추구하는 삶, 즉 사랑하며, 불의한 세상속에, 사랑으로 정의를 행함으로 하나님나라를 회복시켜나갈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함으로 대할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