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이사야32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n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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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야 32장

찬양: 그리스도의 계절, 세상 모든 사랑 없어


28-33장은 독특한 형태로서 예언이 선포됩니다. 히브리어로는 “호이” 라는 말로 시작하는, 6개의 예언단락이 나오는데, 이것은 의성어로서 “아이고”와 같은 것이고, 한글 성경에는 “슬프다! 재앙이로다, 불행이로다, 화가 있을 것이다”등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즉 이렇게 외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지요. 그가운데 오늘 본문은 “보라!”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보라!라는 말로 청중들을 주목하게 할때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움을 알릴때에 사용되어지는데, 32장은 먼가 다른 것이 그들가운데 펼쳐질 것임을 기대케 하는 희망의 메세지를 기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히브리어 한마디가 있지요. 바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헬라어로는 에에레네!라고 번역되는데, 우리 말로는 바로 “평안”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두 사람이 부둥켜 앉고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인데, 이는 우리의 평안이 하나님과 우리가 부둥켜 앉고 있을때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평안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식 더 늘어난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원하고 외칩니다. 그러나 세상의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방법으로는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이미 확인했지요.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평안은 바로, 오직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질서, 즉 말씀으로 이 세상이 통치될 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


1절은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고, 그의 신하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다! 그 샬롬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껏 그런 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 즉, 공의와 정의로서 이땅을 다스리고, 그 하나님의 평화를 이루어가도록 세우셨음에도, 공의와 정의로 다스린 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라!!!! 드디어 그 왕이 등장합니다. 공의와 정의로 통치할 왕!!!!


그 왕이 펼칠 공의와 정의의 모습을 저자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보여줍니다.  2-3절에 보면 “광풍을 막아주는 피난처, 폭우를 피하는 대피소, 목마른 자들의 시냇물, 뜨거운 사막의 큰 바위의 그늘”과 같다, 즉 억울한 자가 없는 사회! 즉 사회적 약자들이 억울하지 않는 그런 나라라는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로 다스릴 장차 올 한 왕!을 이야기 하면서 이사야는 지금까지 그렇지 못한 지도자들을 향해 6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어리석다”라고 할때에 우리는 그것을 학식의 유무나 지식의 적고 많음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어리석음의 기준을 거기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둡니다. 그에게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자의 속을 비게 하여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것이 없어지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항상 거짓과 어리석은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누구입니까? 선지자는 그러한 자를 이샤야는 8절에 “존귀한 자”라고 말합니다. 존귀하다는 것은 품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품격있는 사람인가요? 단순히 권력이나 학위나, 재물을 가졌기에 그 사람이 품위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 사람이 말하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그 사람이 어떠한 일들을 계획하는지가 그 사람의 품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 이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존귀한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이지요. 하나님이 자녀들이 우리가 거한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하나님의 정의로운 나라가 도래하기를 꿈꾸하며 주님 그 존귀한 꿈을 꾸는 자들로 서기를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을 주권을 인정하며,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로, 정의와 공의를 베푸는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 세워져, 이 나라가 주님이 다스리시는 “샬롬”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길 말입니다.



9-14절에서 선지자는 “안일한 여인들”을 향해 외칩니다. 그 여인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염려없는 자들입니다. 즉 염려가 없기 위해서, 그들은 땅을 사드리고, 포도원을 지었습니다. 즉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긴 이들이지요. 다른 이들의 가난과 목마름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오히려 자기의 평안함을 위해 그 가나한자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착취한 것입니다. 


왜 특별히 여인들을 향해 말하고 있을까요? 여자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여인들이 이스라엘의 최후의 영적 보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영적 보루마저도 어떻게 되어버렸습니까?  풀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하는 만족감속에서 편안하게 살면서, 주위에 억울한 일을 당하여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사회적 약자들을 더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가난한자들의 피가 뭍혀져 있는 그 돈과 그들의 옷을 깔고 앉아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셨다!!”라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머지 않아  너희가 누리는 풍요가 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너희가 사는 땅들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찔레 덩굴로 덮일 것이고, 성읍 사방에서 곡소리가 들릴 것이고, 화려하던 거리는 인적이 없는 폐허로 변할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나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이 선지자가 외치는 “안일한 여인들”은 바로 우리입니다. 즉 우리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마지막 영적 보루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니콜라스 월터스포트의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때까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진정한 평화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정의로운 나라”를 너도 나도 외치고 있습니다. 공정과 정의가 이렇게까지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땅이 정의롭고 공의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이땅에 정의와 공의로 통치되는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될 수 있을까요?


15절 이하에는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마침내!!! 영이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질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공의와 정의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때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공의가 입맞추고, 샬롬이 이루어지는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으로만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피로물든 그 모든 시기 속에서도 그 어리석었던 지도자들 역시 “정의와 공의”를 외쳤던 것을 역사를 통해 봄으로 우리는 인간이란 존재가 스스로 “정의롭고 공의로울 수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즉 하나님의 영이 부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다는 것은,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지도자, 성령이 충만한 목사, 성령이 충만한 아빠와 엄마, 성령이 충만한 사장, 직원이 될때, 비로서 정의가 이루어지고 공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담임목사님의 말씀처럼, 로마서에 말씀처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옴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가, 하나님을 알든 알지 못하든, 모든 피조물이 “공의와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라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의와 공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고통가운데서 벗어나길 세상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신음하는 세상속에서 그들이 외치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들들.. 

바로 오늘 이사야는 그들은 바로 “하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나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 말씀에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우리가운데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그분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갈때, 우리의 삶에 주어진 그 사역의 현장, 가정이, 이 나라가 정의가 물같이 흘러가고,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흘러가듯, 이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고, 평화와 입맞추게 되는 그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1. 그저 오늘 우리가 누리는 것에 안일하지 않고, 오늘 우리가 이땅에 마지막 최후의 영적 보루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공의와 정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영적보루로서 우리를 보내신 그곳, 일터와, 가정, 그리고 나라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