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찬송 302장)
말씀 : 이사야 31장 1~9
오늘 읽은 이사야31장 말씀도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시고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품어주고 이해하고 살 길을 허락해 주겠다는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변에 여러 나라들의 동맹에도 절대 가입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앗수르도 보지 말고 주변 열강들도 살피지 말고 오직 너희는 나 하나만 보고 믿고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불같이 진노하시고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결정은 또 다시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불 같이 진노하시다가 내가 너희를 돌보고 키우고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영락없는 우리 부모님과 같은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하나님께서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이집트로 결국은 내려가고 말았구나! 결국 그 곳에서 병거의 많음을, 군사력을 의지하는구나, 결국 나를 의지하지 않는구나, 하나님의 서운함을 표현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의지했던 애굽의 실체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애굽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다. 너희가 의지하는 그 애굽은 결코 너희를 돕지 못할 것이다. 너희를 도울 수 있는 이는 나 여호와 한 분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실 여기까지 살펴보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돕는 손길을 보내주시고 힘겨울 때 어려울 때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서 도와 주십니다.
그렇다면 유다 백성들이 지금 앗수르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겨워하는데 애굽 사람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연결해 주신 사람,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내주시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시고 하나님이 연결하신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는 요나단을! 모세에게는 아론을 그리고 바울에게는 디모데를 연결하시고 예수님에게는 세례 요한이라는 동역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하라고 짝지어 주시고 붙여주신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집트 백성들은 하나님이 특정하게 이름까지 거명하시면서 절대로 이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연합군도 구스를 중심으로 한 동맹도 애굽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백성들이 이집트를 의지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때로는 사람들을 통해서 돕는 손길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손길이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에게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믿음의 파트너는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냅니다.
반대로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보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집트를 의지했던 유다 백성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으시고 도우시고 구원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내가 너희들을 돌보고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어제 30장 말씀과는 전혀 다른 어조입니다.
어제 말씀 그리고 그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내가 너희를 날개 그늘 아래 품어주고 돕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우리 부모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끝까지 너희를 붙들겠다. 이집트에 내려가는 너희들을 내가 끝까지 쫓아가서 너희를 돌이켜 놓고 말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돌아온다는 전제입니다. 내려갔지만 돌아오기만 하면 이집트를 의지했지만 그 의지를 멈추고 멈추어 서서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품고 살려주겠다는 말씀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심히 거역하던 자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모든 과거는 잊어버리겠다 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갈 때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멈추어 서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때로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너무 멀리왔다고. 이제는 돌아설 수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너무 멀리 온 때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멀리 가버렸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날개 그늘 아래 품어주시고 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하나님 은혜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어찌 돌이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부모의 사랑보다 이 세상 어떤 존재하는 어떤 사랑보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부디 너무 멀리 갔다고 자책하지 마시고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하나님 그늘 아래 쉼을 얻고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해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유다 백성들의 걱정과 염려의 근원까지 해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의 걱정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앗수르 아닙니까? 앗수르 때문에 모든 일이 다 이렇게 된것 아닙니까?
세계의 열강 앗수르의 문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풀어주시고 해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앗수르가 반드시 칼에 엎드러 질 것이다.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직접 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 사자들의 칼로 앗수르는 멸망당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너희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고 품는건 기본이고 너희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까지 그 근원을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가고 너무 멀리 왔다고 자책하지 마시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출발을 함께 이루어가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1)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2) 하나님의 진노가 무섭지만 돌아서면 사랑으로 품어 주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늦어 싶더라도 하나님게로 돌이키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