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18:1-7
찬송가 찬송가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주전 715년에 구스는 25왕조를 건설하여 20년간 애굽 전역을 지배했습니다. 이 때 구스는 예루살렘에 사신을 보냅니다. 사신이 누구인지, 그들이 온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2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갈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해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이들을 향해 “민첩한 사절들”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것은 이들이 우연히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구스가 매우 빠르게 사자들을 보내었기 때문에 이들이 예루살렘에 왔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스는 아주 강한 나라였습니다. 나라 안팎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스기야가 기대기 참 좋은 나라였습니다. 앗수르라는 공통의 적을 가지고 있던 예루살렘과 구스는 정치 파트너로 함께 하기 참 좋은 상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스는 예루살렘으로 사신을 빠르게 파견했습니다. 이루고 싶은 모종의 정치적 아젠다.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하여 함께 앗수르에 대한 군사적 저항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사신들이 왔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사야는 이런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스의 사신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죠.
왜 돌아가라고 합니까? 그들의 동맹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4절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지금 조용히 계십니다. 침묵하고 계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루살렘은 답답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액션도 없으시니 마치 박제된 호랑이처럼 느껴졌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침묵이 무관심 또는 무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박제된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행과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특별히 개입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존재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조용히 계시면 빼도 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침묵하시니까 없는 분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5-6절입니다.
5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6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
포도원 농부는 아무 때나 전지용 칼로 가지와 덩굴을 잘라내지 않습니다. 꽃이 지고 포도가 여물어갈 때에 열매가 잘 자라도록 전지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열매가 무르익어서 남길 것과 잘라버릴 것이 분명 해졌을 때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대적자들을 쳐서 그 가운데 일부를 잘라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이 결정된 구스와 손을 잡고 앗수르에 대항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유일한 희망이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손을 잡지 않고, 구스와 손을 잡는 일은 자신을 스스로 잘라내어 죽음에 내 던지는 일입니다. 이미 파멸이 예고된 구스와 손을 잡고 구스와 같은 길을 간다면 예루살렘도 구스와 함께 파멸적 운명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대안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유일한 대안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직접 개입을 하시든, 침묵을 하고 계시든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동맹은 하나님과의 동맹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는 이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 나의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 뿐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손을 잡는 나의 삶이 되게 하소서.
- 내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침묵이 느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