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시편 104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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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104편

찬양: 하늘에 나는 새도,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104편의 저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만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편의 그림같은 이 시를 한절 한절 따라가다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로운지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만물을 먹이시고 돌보시는, 그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만물을 생각하면, 그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진화론이나, 창조론이냐를 가지고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시인에게, 그가 보고 있는,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이 만물은, 논쟁이나 지식의 문제를 넘어 묵상의 내용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주제였습니다. 그가 바라보며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심히 광대하며 존귀와 권위를 입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에겐 창조주 하나님은 찬양과 송축광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가 보는 이 자연을 볼때에 우리는 그분의 광대하심과 부요하심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의 묵상끝에 우리도 또한 그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부요하심을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대략의 구성을 보면, 이 시편은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의 순서를 따라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6절은 빛과 궁창을 창조하신 첫째날과 둘째날의 내용을, 7-18절은 땅에서 물을 분리하시고 푸른채소를 땅에 창조하신 셋째날의 내용을 다룹니다. 그리고 19-23절은 해와 달을 만드사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신 넷째날의 창조를 다루고, 24-30절, 공중과 바다와 육지에 각종 생물을 만드신 다섯째와 여섯째 날의 창조사건을 그는 묵상합니다. 끝으로, 31-35절에서, 안식하시며 창조세계를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처럼, 그도 창조의 완전함을 선포하며 묵상과 찬송으로 시인은 그의 노래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성경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특별한 계시라면, 자연은 우리에게 이땅을 창조하신 분이 계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여주는 일반 계시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송축하라” 

바위위에 새긴 정교한 조각물을 보면서, 그것이 바람과 비에 의해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요. 흥미 진진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이 우연히 글자가 종이에 날라와서 붙여져서 그 소설이 쓰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정확한 질서가운데,창조되고 그 질서가 유지되며 보존되는 자연과 그속의 생명들을 보면서 세상은 그것이 그냥,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연히 그것이 생겨졌다고 믿는 것, 그리고 누군가 지혜의 근본이시고, 영원한 능력을 가지신 지혜자가 그것을 계획하고 설계하며 만들었다고 믿는것, 어떤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아니 어떤 것이 더 큰 믿음을 요구할까요?


24절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오늘 우리는 핑계치 못할 것입니다. 왜요? 만물이 존재하기에.. 무엇을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 그분의 창조를 말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은 제 2의 성경이다”


그러나 우리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는 것은, 단지 그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을 찬양해야 할 더 큰 이유28-29절

“주께서 주신 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그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 그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들어 그냥 그 속에 훅 하니 던저놓으신 것이 아니라,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 모든 우주 만물의 창조가, 이 모든 것이 한사람.. 아담을 위해 창조되었고, 즉 우리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오늘 시인은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모든 창조가 “나를 위해 창조되었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로, 바로 이 사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구나.. 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안식과 안전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치열한 삶읠 자리에서 우리는 이 자연을 바라보며, 묵상하며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마지막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33절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그리고 34절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이 기도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씨아흐.. 기도보다는 “묵상”이라고 번역되는것이 더 좋을것 같습니다. 그가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기억하겠다는 것을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그의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두려움과 걱정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한 인생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눈을 들어 산을보라!!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그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자연을 보며 더욱 더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따라 우리도 우리의 주변을 돌보는 삶,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즉 영광된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고,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주여 우리의 걱정과 불안과 의심을 주님앞에 내려놓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심을 믿사오니, 우리로 오직 말씀을 따라, 주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2. 여전히 내 힘과 지식을 의지하며 살며, 늘 강박감속에 살아온 내 모습을 봅니다. 주여, 오직 주님의 지혜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3. 그렇기에 우리에게 예배가 생명임을 압니다. 온전하신 주님을 고백하는 주일의 예배를 온전히 드리게 하시고, 또 우리 자녀에게도 그것을 생명처럼 가르치는 부모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