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시편 102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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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구원으로 인도하는 (찬송521장)

말씀 : 시편102편 1~28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시편102편의 저자는 사람 문제 때문에, 관계의 문제 때문에 아주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 내게 대항하여 미칠 듯이 날뛰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원수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를 잡아 먹을 듯이 미칠 듯이 날뛰며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원수들, 그 원수들 때문에 나는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시편의 표제어를 보면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해서 드리는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시인은 사람 때문에, 주변의 여러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고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 괴로움과 힘들어하는 감정때문에 자신이 외로운 한 마리 새같다고 노래합니다. 6절과 7절입니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광야의 올빼미, 황폐한 곳의 부엉이, 지붕위의 참새 모든 표현이 다 자신이 혼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이 사람은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하소연할 사람이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인의 감정을 느끼면서 나는 정말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전 신문 보도를 보니깐 30, 40대 가장이 가정에서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공간이 생각 밖에도 화장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을 가지고 들어가서 5분내지 10분 정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깐 앉아있다 나올 수 있는 곳이 화장실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가장들이 기억하는 어린시절에 거실은 아빠의 공간이었고 안방은 어머니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방에 들어가서 무언가 하려고 해도 엄마 눈치를 봐야되고 거실에서 보고 싶은 TV를 보려해도 아버지가 TV 리모콘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는 마당에 나와서 놀든지 아니면 방 안에서 책을 읽든지 해야 되는데 요즘은 거실도 아이의 공간이고 안방은 여전히 아내의 공간이고 이제 갈 곳이 화장실 밖에 없다는 뉴스였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이 시인과 같은 감정을 때때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 어디이고 또 내 마음을 가장 함께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요?

내가 소문날 걱정 없이 내 마음을 다 털어놓아도 괜찮을 만한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 시인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입니다.

 

이 시인은 이 절박한 시간에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답답함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관계의 벼랑 끝에 몰렸을 때 하나님을 떠올렸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마음이 가난한 자, 외롭고 마음이 빈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살펴보시고 굽어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발견입니다. 사실 당연한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벼랑 끝에 몰렸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미련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빈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굽어보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외롭다고 느낍니다.

우린 끊임없이 혼자 있다고 탓합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오늘 103편 시인처럼 혼자 있다고 느낄 때,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다 떴다고 느낄 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것은 전화위복입니다.

우리는 도리어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느끼지 못합니다.

비록 관계의 갈등,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도리어 하나님과 깊이 만나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뢸 수 있고 하나님께 우리의 간절한 심정을 함께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부디 사람은 믿을 수 없어도 하나님은 내 말을 듣고 계신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위로받고 힘을 얻으시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24절입니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나의 말' 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말할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 말로 하나님께 입을 엽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제 시인이 깨달았던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사람은 변하고 사람은 변질되지만 하나님은 한결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결같은 하나님, 무궁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내 속 마음을 다 털어놓으면 답답한 것도 사라지고 힘든 것도 없어지고 이제는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우리도 시인의 마음처럼 시원해지길 축원합니다.

 

기도

 

1)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전화위복의 축복을 주옵소서.

2)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 주변에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게 하시고,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하소서. 독불장군처럼 신앙생활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