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35편
찬양: 우리 함께 손잡고 가세, 내 평생에 가는 길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일중에서 어쩌면 가장 쓰라린 고통은, 무엇보다 믿었던 사람들, 사랑했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배신일 것입니다.
시편기자가 고백하는 시편중에서 많은 주제가 이 사랑하는 사람,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배신당함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배신의 상황들을 시편은 다루고 있을까요 어쩌면 이 말씀들은 성도가 믿음으로 인생을 살아갈때에, 이 배신당함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쓰라린 배신의 상황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 많은 시편들이 이 배신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이 상황을 이해하면서 본문을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은 지금 전쟁가운데 있습니다. 그 전쟁은 7절에 보면, 까닭없이 그들을 다윗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 했기에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죽이겠다고 덤비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우리의 마음은 정말 녹아내린다 라는 표현으로 충분할까요? 아마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좌절, 억울함, 분노의 마음이 들 것입니다.
1-3절의 말씀은 바로 그런 상황속에서 그가 선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 쓰아린 아픔, 배신당함의 상황속에서 그는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싸우시는 분이다!! 그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적들에 향하여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4-8절, 그들이 수치를 당하고, 낭패를 당하게 하시고, 바람에 겨와 같이 그들을 몰아내시고, 그들의 길을 미끄럽게 하소서… 즉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기도를 마주할때, 사실 마음 한켠에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저주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건 좀 심한것 아닌가..” 사실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면, 우리도 나를 배신한 그들을 향해 사랑하지 못함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은데.. 그런데 왜 마음의 불편함이 있는가 하면,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고, 그것이 시편이라는 책, 성경에 쓰여있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은 노래로서, 당시의 사람들도, 오늘 우리도 찬양해야할 노래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우리가 비록 나를 배반한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있어, 원수를 사랑할 마음과, 용서가 하게 대 할라는 기도가 아닌, 저주를 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다윗을 생각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지요? 그는 자기를 그렇게도 시기하고 질투하여 수년동안 자기를 죽이려고 쫓는 사울, 한때는 자기의 딸을 그에게 결혼시킬 정도로, 한때는 그를 총애했던 사울, 두번이나 그에게 복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 받은 자를 내가 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고, 그분의 공의를 신뢰하였기에, 그래서 그는 스스로 복수를 하지 않았던 사람.. 그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다윗의 그가 드리는 이 기도, 마치 자기를 배반하고, 까닭없이 자기를 음해하는 그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그 기도는, 공의로운 왕이요, 만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악한자들을 공의에 따라 심판하사 정의를 세워주시길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상황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함의 고백, 이것이 바로 다윗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9-10. 그 마음의 쓰라림과 고통속에서도 그가 내 뼈, 즉 모든 것 영혼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릴 수 있었던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배신, 그것은 궁극적으로 선을 베풀었더니, 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친구나 형제처럼 대했고, 그들을 위해서 금식했고, 울었고, 선을 베풀었는데, 그에게 돌아온것은 바로 11절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못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며” 있지도 않은 일로 다윗을 모함하는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너무나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지요. 이런일을 겪을때 우리의 마음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할수 있는 방법을 통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고, 또 나에게 그러한 불의함을 행한 그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적극적으로 해를 가하는 방법으로든, 또는 용서하지 않음으로, 소극적으로 복수하는 방법이든 무엇이든 말이지요.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상황, 그 마음속에서 한가지를 깨닫습니다. 13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그들을 위해서 마음다해 기도한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왔다는 것은.. 바로 그 기도가 내가 위해 기도했던 그에게 합당하지 않을때, 그 기도가 헛된 기도가 아닌,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3절 말씀처럼, “네가 진 평안이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것이니라”라는 그 말씀처럼 말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때와 방법은 주님께 있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18절, 여전히 찬양할 이유입니다. 모든 사람앞에서, 비록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선을 베풀었더니, 악으로 돌아오는 그 억울한 상황, 믿었던 사람으로 배반을 당하는 정말 가장 가슴아픈 상황일지라도, 그 상황속에서도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오늘 불의한 세상속에서, 여전히 배반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과, 그를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에 의해 배반당하셨기에, 우리의 당하는 배반은 우리가 주님을 배반했던 그 십자가를 깨닫게 하고, 알게하는, 우리가 걸어가야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가 행할 가장 분명한 선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옳다하시고, 하라하신 그것, 그 배반의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의지하며 신뢰한 그 고백, 기도.. 그 선이 악을 이기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22절의 말씀처럼 그분이 우리의 증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변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억울한 세상속에서, 불의한 사람들 가운데, 우리에게 선으로 악을 이겨낼 수 있도록 주신 기도와! 또 한가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7절,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을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공동체이고,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 함께 이 불의한 세상속에서 함께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함께 찬양할 공동체 바로 교회입니다. 이 불의한 세상 속에서 버티고 승리해 나갈 수있도록 주신 이 공동체, 오늘 이 공동체를 더욱더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먼저 오늘 우리의 여럽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가장 선하신 길로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으며, 오늘 우리로 참 소망으로 오늘의 삶을 인도하여주시옵소서.
2. 불의한 세상속에서, 불의를 선으로 갚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오늘 쉽지 않은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3. 오늘 우리에게 주신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마음껏 섬기며, 중보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