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찬송가 366장)
말씀 : 시편33편 1~22
우리는 어제 32편에서 회개한 사람이 받는 복에 대하여 묵상했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죄에서 돌아서는 것만이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인생의 참된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함을 깨닫는 것도 회개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시편 33편을 통해서 인생의 목적이자 최고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4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를 즐거워하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라! 세상 즐거움보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즐거움이란 마귀의 제일 무기를 물리치는 최고의 영적인 무기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 제 1조에는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언제 즐겁게 됩니까?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은 가장 즐겁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해도 자기가 영광을 받으면 찜찜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자기도 즐겁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사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기업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업하고, 주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림해야 합니다. 그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제일 목적입니다.
또한 본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즐거움을 찬송으로 표현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감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적인 신앙도 필요합니다. 왜 힘이 약한 여자들이 힘이 강한 남자들보다 더 오래 삽니까? 육신의 힘은 약하지만 감정의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면 건강 가능성도 커집니다. 물론 체면도 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체면을 차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울 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고 즐거울 때는 즐거워하면서 옆에 같이 있는 사람에게 편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둘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수금은 거룩한 음악에 사용된 구약 시대의 악기 중 가장 고귀하게 여겼던 현악기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찬양할 때는 새 노래로 찬양하고 즐거운 소리와 아름다운 연주로 찬양해야 합니다(3절).
어떤 공동체는 ‘새 노래’를 문자 그대로 ‘새 노래’로 해석해서 새로운 복음성가를 열심히 만들고 거의 복음성가만 부릅니다. 그러나 ‘새 노래’란 ‘새로 만든 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 만든 복음성가도 좋은 것이 많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전해져 내려온 옛 찬송가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결국 ‘새 노래’란 ‘새로 만든 노래’란 뜻이 아니라 ‘새롭게 부르는 노래’를 뜻합니다.
노래는 자주 듣거나 부르면 싫증이 납니다. 찬송도 너무 익숙해지면 처음 부를 때의 감격을 잃고 습관적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지 말고 늘 감격하며 부르라는 것이 새 노래로 부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여겨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은 몇 백 년 동안 성도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찬송을 부를 때마다 새로운 감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찬송을 부를 때마다 새로운 감격과 감동과 감사가 넘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첫째, ‘받은 것’은 외면하고 ‘받을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구원이란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이미 받은 존재입니다. 그 선물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깊이 인식하면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또한 지금 살아있는 것, 교회에 나올 건강이 있는 것, 일용할 양식이 있는 것 등 이미 받은 많은 은혜를 생각해도 역시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 다음 셋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용해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과 삼라만상을 창조했습니다(6절). 또한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처럼 쌓았고 깊은 물을 곳간에 두셨습니다(7절). 고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무한한 신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신비한 바다까지 관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8절).
또한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다스리시고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고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대로 이뤄지게 하십니다(9-11절). 그처럼 천지만물을 주관하시고 나라의 흥망성쇠와 인생의 생사고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면 그때부터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자기를 겸손히 낮추고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최고로 높여주십니다. 결국 축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마음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체질화되어서 윗사람을 높이는 예의 바른 행동이 저절로 나옵니다. 윗사람은 어떤 사람을 끌어줍니까? 자신을 마치 주를 경외하듯이 높여주는 예의 바른 사람을 일순위로 끌어줍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교만한 태도가 ‘버릇이 없는 태도’이고 청소년들에게 나타나는 교만한 태도가 ‘예의가 없는 태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버릇이 없는 태도’와 ‘예의가 없는 태도’는 인생을 실패하게 만드는 제일 요소입니다. 예의 바른 청년은 대개 성공이 예약된 청년입니다. 자녀를 예의 바른 자녀로 키우십시오. 그런 자녀가 대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되고 결국 인물이 됩니다.
가끔 보면 예의 바르지 않은 사람이 예의를 차릴 때도 있습니다. 비굴하게 작전상 머리를 숙일 때입니다. 그런 작전상의 비굴한 예의가 아닌 진짜 예의 바른 태도를 힘써 갖추십시오. 윗사람이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예의는 가급적 지키려고 하십시오.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의 없는 태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까지 잃게 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상처와 문제가 심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만 잃지 않는다면 결국 정의가 승리하고 심은 대로 거두는 역사를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12절). 또한 하나님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천지만물의 흐름과 인간의 역사에 세세하게 개입하시고 늘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신다고 노래합니다(13-15절). 그처럼 하늘에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을 성도는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사람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고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16-17절). 그처럼 사람 숫자와 힘으로는 자기를 온전히 구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면 하나님이 돌봐주시고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게 하십니다(18-19절). 그래서 시편 기자는 도움과 방패가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20절).
그렇게 하나님의 성호를 의지하겠다고 다짐하면 마음에 행복과 희망이 가득 차고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21절). 그처럼 즐거운 마음과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시편 기자는 시를 끝냅니다(22절). 간단히 말하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영어로 3h, 즉 도움(help)과 행복(happiness)과 희망(hope)을 얻는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자기 현실을 바라보면 가끔 탄식이 나옵니다. “내가 정말로 찬란한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찬란한 계획이 여전히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인생의 목적을 잃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시야가 커지고 인생의 목적이 뚜렷해집니다. 살면서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에 집중하십시오. 때로 어려운 일을 겪지만 그때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하나님이 찬란한 꿈과 비전을 새롭게 해주시고 마침내 그 꿈과 비전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기도
1) 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삼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2) 시련이 와도 좌절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