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시편 13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ug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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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후일에 생명   (찬송가 608장)

말씀 : 시편13편 1~6


오늘 시편 13편은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절은 고통에 처해 탄식하는 다윗, 3~4절은 탄식에 머무르지 않고 기도하는 다윗, 5~6절은 기도를 통해 찬송을 회복하는 다윗이라고 소제목을 붙일 수 있습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릴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탄식을 합니다. 오늘 다윗도 탄식을 합니다. 똑같아 보이는 탄식을 하지만 사실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탄식할 때 절망하기 때문에 목적이나 대상이 없이 한숨을 내 쉴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내용을 보면 다윗은 분명한 대상을 향하여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1절 보십시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여호와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탄식 중에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의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마음껏 탄식할 수 있습니다. 불평할 수 있습니다. 원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은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금지시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조차 용납하십니다. ? 우리 아픔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신음 소리 조차 내지 말라고 하면 미쳐 버릴 것입니다. 사람이 힘들 때 기도가 나옵니까? 정말 힘들고 어려우면 멘붕에 빠집니다. 사람은 그정도로 약합니다. 멘붕에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나오는 것이 탄식이고 한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금지시킨다면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원망도 좋다, 불평도 좋다. 탄식도 좋다. 나를 찾기만 해라. 나를 잊지만 말고 나에게 나아와라.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고통 중에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큰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기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는 어떤 형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여러분 속에 있는 것들을 일단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가게 되면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무엇을 기도할지 생각나게 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심한 고통 때문에 어떻게 기도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어느 때까지이까어느때까지니이까 탄식만 했습니다.

어느때까지니이까 4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의 크기가 크면 더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고통의 크기 보다는 고통의 길이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합니다.

고통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기간이 짧고, 언제까지 고통을 당할 것인지 안다면 그나마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인내해도 고통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면 정말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고통 중에서 탄식하던 다윗의 입술에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13:3, 개정)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기도와 탄식 보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라면, 자 그렇다면 기도와 탄식의 차이가 뭘까요?

나의 눈을 밝히소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해달라는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관용어법입니다. 믿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사람이 너무 힘들면 죽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죽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지요. 다윗은 죽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정신없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단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오로지 자기 이야기만 하나님께 쏟아내 놓으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니오.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탄식입니다. 물론 탄식도 일종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받으시기 원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듣기를 원할 때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다윗이 어떻게 성숙한 삶으로 변화되는지!

(13:5, 개정)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붙잡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구원하신다. 그래서 다윗은 환란중에, 고통중에 기뻐합니다.

(13:6, 개정)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기뻐할 뿐만 아니라 노래합니다. 찬송합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고통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탄식하는 단계에서 기도의 단계로, 그리고 기뻐하고 찬송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13편은 6절밖에 안되는데, 우리가 충분히 외울 수 있습니다.

암송해서 환란 당할 때 13편을 되뇌이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기도

1)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옆에 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십시오.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특권을 성도에게 주셨음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2) 부르짖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는 기도로 나아가는 믿음의 성숙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