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32장
찬양: 주의 손의 나의 손을 포개고, 세상 모든 사랑없어
욥의 말이 그치고, 마지막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지금껏 욥의 세 친구와 욥의 말들도 사실은 쉽지 않았지만, 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이 되기도 하고, 그렇기에 이해하는 데 있어서 조금은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엘리후가 이야기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이 등장하시기 전의 하나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전초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하면서, 그의 말과 역활에 대해서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반면에, 어떠한 사람들은 엘리후의 말을 회의적이고, 비판적으로 보며, 의미 없기 치부해 버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 이 본문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좀 혼란함을 주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본문은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것 안에서 우리가 이해하고자 한다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등장하실때에 욥, 엘리바스, 빌닷, 소발과 쟁론하시지만, 엘리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욥의 세 친구들을 향해 욥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질책하며 따끔하게 충고하고 있는 그의 말과, 욥을 향해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하는 욥을 향해 분노하고 있는 엘리후를 향해 하나님이 그를 향해 틀렸다!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의 말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분명한 것은 엘리후의 말이 맞다고 해서, 욥의 말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는것이, 하나님께서 욥의 말도 인정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엘리후도 맞고, 그러나 욥도 맞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왜 하나님은 욥의 세친구들의 말은 정죄하시지만, 엘리후의 말에 대해서는 그의 말을 인정해주시는 것일까요? 오늘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듣고자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엘리후의 말은 단지 세 친구들처럼 보지 말아야 할 이유이자 근거,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서 인정해주시는 이유와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8절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전능자의 숨결”이라고 말하는 그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이지요. 지금 엘리후는 지금 성령의 감동하심가운데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 세친구들은 욥에게 자신의 연륜과 전통에 근거해 욥을 정죄하고 질책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엘리후는 그들에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엘리후는 그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인내하였음을 말합니다. 세 친구들이 욥에게 진정한 지혜로 대답해 주고, 그를 위로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기다렸지만, 결국은 그들이 말하는 인간의 지혜와 전통으로는 그가 겪고 있는 고난의 상황속에서, 그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주지 못했으면, 어떠한 위로도 할 수 없는것을 그가 본 것이지요.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발을 디디고, 마주하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세상은 대답을 찾고자 합니다. 왜 이 세상은 이렇게 고통속에 있는가? 이 세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결국 무엇이 진리인지, 그,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진리를 찾을 수 없자, 사람들은 진리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진리다! 그러나 진리가 없을수록, 의문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아져가고, 그렇기에 진리가 없다고 말할수록, 그 진리에 대한 갈망함은 더욱 커지게 되어 있지요.
세상은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 진리만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위로자를 필요로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질병으로 인해,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물밀듯 닥쳐오는 그러한 시대속에서..참 진리를 통해 진정한 위로를 얻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대답합니다. “너희는 이렇게 말을했다!그를 추궁할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욥의 친구들은 그들이 가진 지식과 전통으로는 그 대답을 찾을 수 없자.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는 말로 그 상황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엘리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렇게 너희가 가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그건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하는 식으로 진리를 찾는 세상에 대해, 그것을 우리에게 물을때, 우리는 우리의 무지를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진리를 찾는 세상속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선포해야 하며, 그것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여 그들로 알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지혜도 대답하지 못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인생의 공허함과, 무의함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를 향해 말이지요. 병들고 아픈 이 세상을 향해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
엘리후는 이 열정과 사명이 있었기에, 그 성령의 뜨거움이 그에게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인정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시한번 기억하는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땅에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외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의 언어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자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말이지요. 베드로는 그것을 “선한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 억울한 자가 참는 것을 통해, 종이 주인을 성실하게 섬기는 것을 통해..
세상은 우리를 통해 진리를 알 것입니다.
그 사명을 회복하십시다. “누가 나를 위해 갈꼬” 그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 절박한 마음이 오늘 우리가운데 들려져,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 는 고백속에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섬기는 그 작은 선행을 통해 세상이 주를 알게 되는 놀라운 일, 그 사명의 회복이 우리모두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 주여 오늘 우리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우리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를 사모함의 열정이 우리안에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 혼탁한 세상가운데 진리를 선포하되,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랑과 선한일을 행함으로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로 세상이 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 위로자가 없는 세상가운데, 우리가 세상의 참 위로자, 복음의 증인이,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통해 죄악으로 어두어진, 상처받은 이 땅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