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욥기 22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n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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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욥기 22

찬양: 이것이 영원한 . 장미꽃 위에 이슬


세번째 욥의 친구들과 욥의 논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데만사람 엘리바스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갈수록 점점 극단적이고, 주관적으로 흐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 1-3절까지의 그의 논지는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선한자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자에게 벌을주시기 때문이지요


그가 특별히공평하신 하나님 말하는 이유는, 4네가 잘했으면 지금 하나님께서 네게 벌을 주시겠는가?” 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인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5절부터네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겪는것 보니.. 너는 분명 엄청난 죄를 지었음이 틀림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스스로 보지도 못한일에 대해서 그는 확실한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할때에 하나님은 공평하신데, 욥이 고난을 당하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벌이며, 벌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죄를 지은것이다!라고 그는 생각한 것입니다.


그의 말이 틀렸나요? 어쩌면 그의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라고 하는 그말은 분명 틀린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이 욥에게 가시가 되고, 아픔이 되며, 욥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그에게틀렸다!” 하시는 것입니다.


12절부터 그는 말합니다.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 보고 계신다!라고 말입니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조심해라! 하나님이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 

말은 어린 저에겐 두려웠던 이유는나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 내가 잘못하는지를 기다리시면서 기억해놓으셨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비디오를 틀어서 보게 하시며, 수치와 창피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그러한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려움이 어느정도 제가 죄를 짓지 않게 하는 효과? 있었지만

그러나 나를 항상 지켜보시는 두려운 하나님은 그저, 나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는 ,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잘못을 지적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생각때문에, 매일 잘못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저는 그분이 두려웠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니 매일 죄를 지을 때마다 그분으로부터 숨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논리를 엘리바스는 펼치며 21절부터 마지막까지 이렇게 그를 회유합니다. 그러니회개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선한자에게 복을 주신다! 악한자를 벌하신다! 회개하라!!! 엘리바스의 말은 어쩌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말을 틀렸다 하십니다. “너의 말은 거짓이다!!”라고 하는 욥의 말이 맞다고 하십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틀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바스는 맞는 말을 하였음에도 틀렸을까요?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 있었고, 모세는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40일이 지나도 모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안했습니다. 백성들이 동요하자 아론은 그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송아지를 만들고, 그것가리키며 아론이 말합니다우리를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아론의 말이 틀렸나요?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분은 하나님맞지요.. 그런데 모습을 보는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을 쓸어 없애고자 했으나, 모세가 하나님앞에 그들을 위해 중보하였고,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십니다. “너희는 가라! 내가 그땅으로 너희를 들이겠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으리라


모세는주여 당신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희는 황량한 이곳 광야에 있을지라도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 그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너는 나를 보지 못할것이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34:)


너는 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어떤 형상, 어떤 법칙이나 어떤 형태로 규정내릴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이해속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선한자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자에게 벌을 주시는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은 선한자에게, 선한일을 하는 나에게는 복을 주셔야만 하는 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일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을 받기 위해 그들은 선한일을 합니다. 이것이 금송아지를 만든 그들의 마음이었고, 또한 지금 법칙속에서 하나님을 가두려는 엘리바스의 마음인 것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그의 말이 맞는 말이지만 틀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입니다. 말은 무슨 말인가요? 그분은 인격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어떠한 법칙이라서 우리가 이해하는 속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죄악에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인격이신 그분은 하나님앞에 간절히 부르지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고, 기도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자 하시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셨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돌이키심으로 그분의 변하지 않는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변하지 않는 인격이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실패로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인격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격이신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관계를 욥과 맺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 그리고 친구들의 이해속에 갇혀서 법칙으로 계시고자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한 자녀됨의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어제 묵상했던 것처럼, 그것은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라, 보기만해도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죄라면, 하나님을 그들의 이해속에 가두고자 이스라엘 백성처럼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도엘리바스처럼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선한자에게 복을, 악한자에게 벌을 주시니, 벌을 받고 있는 너는 회개해야 한다 옳은 진술도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됨의 영광을 욥이 누리고, 욥과 그러한 친밀함을 맺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욥을 자녀됨의 관계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이해를 넘어서는 일을 당하는고난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유없이, 까닭없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고난속에서도 버티어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걸어가겠다고 말할 있는 이유입니다. 오늘 여전히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십자가의 길에서 고난의 길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욱 느끼는, 생각만해도 너무나 좋은 하나님, 그래서 주와 함께 영원히 있고, 그의 궁정에서 날이 다른곳에서의 천날보다 낫다고 말할 있는 고백이 우리속에 있고,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을 소망합니다.


 우리 이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하나님 우리의 이해속에 하나님을 가두려고 했던 우리의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럴듯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고백한다 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없는 상황속에서는 주님을 원망했습니다. 여전히 이해할 없음에도, 그럼에도 주님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놓치 않으시는 주님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주여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 것처럼, 또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감을 통해 많은 아픈자들의 위로자가 있도록 주님의 마음을 더욱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3. 위로가 필요한 세상속에 나눔과섬김의교회가 참위로자가 되는 교회가 있도록, 우리의 사명과 부르심속에, 작은 실천을 통해 증거자의 삶을 살도록 인도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