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욥기 5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y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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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빛나고 높은 보좌와  (찬송가 27장)

말씀 : 욥기 5장 1~27


어제 4장에 이어 오늘 5장도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발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당한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 온 세 친구 중, 엘리바스는 가장 나이가 든 연장자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지식, 신학적인 지식이 풍성했습니다.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고난이라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될 수 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믿음을 단단하게 하시고, 진정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게 한다. 이런 멋진 말을 합니다. 정말 훌륭한 신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다음은 더 멋진 말을 합니다.

(5: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5: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5:20)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5:21)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고난 중에도 두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심!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

이 둘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해하려고 나를 일부러 고생시키기 위해서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선하신 분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받는 이 고통은 하나님이 실수해서 어쩌다가 생긴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신앙고백입니까? 이 얼마나 정확한 신학적 지식입니까?

엘리바스가 욥을 향하여 말하는 신앙고백과 신학적인 논리는 틀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신앙고백과 정확한 신학적 지식이 전혀 욥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엘리바스는 그 좋은 신앙고백과 신학적 지식으로 욥을 정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가진 신앙과 신학에 과도한 확신을 갖게 되면 교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욥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5: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부르짖어 봐라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의인 중에 너의 편을 들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욥이 잘못된 신앙을 가졌고, 욥이 죄를 범해서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엘리바스는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욥! 네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뼈아픈 말을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적인 확신에 가득 차서 엘리바스는 계속 욥의 마음을 휘벼파는 아픈 말을 이렇게 던집니다.

(5: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욥이 회개하지 않으면 욥에 집을 지금 당장 저주하게다고 합니다.

(5: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욥의 자식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망할 것이라고 저주합니다.

(5: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욥의 재산이 다 몰수 당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저주합니다.

 

욥은 이미 재산도 다 사라지고 자식도 다 죽었습니다. 이제 죽을 날만 받아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그런 욥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욥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런 저주받은 인생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습니다. 한 번 죽은 욥을 또 죽이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친구에게 어떻게 이렇게 악담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가 가진 신앙과 신학적 지식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도리어 그 사람의 마음에 못을 박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신비한 체험과 영적인 경험, 그리고 신학적인 지식을 자랑하면서 주변 사람을 죄인 취급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쉽게 주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신앙에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의 오만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5: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나라면...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나같으면 기도했겠다.

무슨 뜻입니까? 욥은 기도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징계 받는다고 쉽게 욥을 판단합니다.

 

욥이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부르짖지 않았습니까?

욥도 기도하고 부르짖었잖아요.

그런데 기도하지 않았다고 쉽게 형제를 판단하고 있어요.

오만이지요. 교만 중에 교만입니다.

 

(5: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같으니...

 

고통받는 욥 곁에서 그들은 연구만 하고 있었습니다.

욥의 고난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 이유를 연구만하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자의 고통을 연구하지 마시고 그의 고통을 위로해 주십시오.

 

우리는 연구한다고 해서, 엄청난 신학적인 지식을 갖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누가 압니까? 성령님이 아세요.

그러므로 연구하기 보다는 겸손해지세요.

고난앞에 겸손해지세요. 검손하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세요.

고난이 왓을 때 내가 아는 신학적인 지식으로 처리하려고 하지 마세요.

고통 받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의 신앙적인 경험으로 위로하려 하지 마세요.

겸손하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세요.

성령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분에게 순종하세요.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고통받는 자를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기도

나의 신앙고백과 신학적 지식이 교만이 되지 않게 하소서.

항상 겸손하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여 지혜롭게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로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