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찬송가 379장)
말씀 : 느헤미야 12장 1~47
오늘 느헤미야 12장의 중심 내용은 성벽 재건을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먼저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느 12: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부터 나옵니다. 스룹바벨은 1차 포로 귀환자들을 이끌고 온 지도자입니다. 그러니까 1차 포로 귀환때부터 3차 포로 귀환 때까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파악할까요?
단순히 한 번 예배를 잘 드려야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느헤미야는 이번 기회에 예배 제도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예배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서 현재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주일, 감사주일, 성탄주일 이런식으로 특별한 감사예배를 성대하게 드립니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날, 특별한 감사 예배도 중요합니다만 그 예배가 예배다워지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예배가 잘 드려져야 합니다.
평상시 드리는 주일 예배는 아무렇게나 드리고 특별한 날, 특별한 감사 예배만 준비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백성들은 힘을 합해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내고 성벽 재건을 완공했습니다.
그러니 완공 감사 예배를 드리는 것이니 얼마나 특별하겠습니까?
그러나 느헤미야는 한 번의 이벤트로 생각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예배를 정비하여
진정한 예배! 예배다운 예배,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귀한 마음이 우리 가운데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이 나온 후에 그 다음 이야기는
예배 때 필요한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느 12:27)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느 12: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자!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예배를 준비해 나갑니다. 그 다음예배 준비를 또 뭘 합니까?
(느 12: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그렇죠. 예배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과 백성들이 자기 몸을 예배드리기 전에 정결케 합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성벽과 성문을 정결케 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성벽과 성문을 어떻게 정결케 했는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성벽과 성문을 정결하게 했을까?
성벽과 성문에 헌금을 했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물로 씻어서 대청소를 했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제사장 레위인들이 성벽과 성문을 다니며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했을까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아서 우리는 상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했든지 중요한 것은 성벽과 성문을 그들이 정결케 했다는 그 사실 자체입니다. 정결은 거룩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거룩은 세상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 그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드려지는 양과 소를 정결하게 했다는 것은 단순히 깨끗하다는 의미 이외에 이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했다는 뜻입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나의 몸과 마음을 깨끗케 하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을 좇아 살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는 것이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단지 목욕을 하고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이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씻으면서 “하나님! 이제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제 나의 몸과 마음,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이렇게 고백하며 준비하는 것이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성벽과 성문을 정결하게 했다는 뜻은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성벽과 성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쌓았지만, 우리가 성문을 달았지만 이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는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이 중요한 이유는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우리의 뜻대로 우리의 욕심대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이후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대로 사용하겠습니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귀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므로 이제 그 성과 성벽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겼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성벽이 완공되기까지 산발랏 도비야 게셈같은 사람들이 호시탐탐 침략했습니다.
성벽 재건을 방해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들은 계속해서 침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것으로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43절입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여기 즐거워했다. 즐거워한다. 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즐거워’라는 말이 그 다음 44절에도 나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찬송, 감사, 크게 소리 질렀다는 말이 여러 형태로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 맡긴 인생은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기쁨이 가득 찹니다.
사실, 백성들이 감사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 비해 약소국가, 약소민족입니다.
언제든지 침략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웃고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지요. 이런 국가적인 기쁨, 이런 민족적인 웃음은 90년만에 처음 느끼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동안 예루살렘에 있는 온 백성들이 모두 다 행복해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 행복해하는 소리와 노랫소리, 즐거워하는 소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들렸는지 성 밖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들렸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정결케 드리십시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이 책임지는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누립니다. 행복을 누립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다시 정결케, 거룩하게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도 기업도 물질도 가정도 교회도 하나님께 정결하게 구별하여 드리므로
오늘 하루도 행복한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1. 나의 모든 것을 정결케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므로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게 하소서.
2. 오늘 코로나 사태로 힘겨운 살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인 되실 때 찾아오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